[STOP! CO₂③] 칸쿤 회의, 관전 포인트

[프레시안 칸쿤=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29일부터 12월 10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 194개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6)가 열린다.

지난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총회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전 세계 정상이 모였음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이번 총회는 그나마 각국 정상이 참여하지 않은 장관급 회의인데다, 지난 코펜하겐 회의에서 확인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갈등도 여전해 성과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짙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2012년 제18차 총회 유치 방침을 밝혔다. <프레시안>은 고작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제17차 총회의 '징검다리'로만 불리는 이번 총회의 쟁점과 기후 변화에 관한 노동조합의 입장 및 활동에 대해 공공운수노조(준)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속 기고를 통해서 살핀다. <편집자>

① MB는 '회의狂'? 'G20' 이어서 '기후 회의'도 유치?
② 멕시코 칸쿤의 '조용한 전쟁'…승자는 없고 패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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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주가 칸쿤 총회의 1막이라면, 2막인 두 번째 주에는 두 개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 낮은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공식 협상의 두 주역인 미국과 중국의 양자 간 협상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물론 합의제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 방식과 과정의 투명성을 원칙으로 삼는 기후 총회의 특성상 소수 국가들의 권한 집중이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메이저 플레이어의 스코어를 따라가는 것은 중요하다.

코펜하겐과 마찬가지로 두 국가의 거래(?)에 따라 진정성이 있든 없든 실속이 있든 없든,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마련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또 멕시코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초대받지 못했지만, 기꺼이 참석하려는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위시한 알바(ALBA) 국가들의 기후 정의 대변국 노릇이 사뭇 기대가 된다. 볼리비아는 1997년 교토의정서 당시에도 감축 목표를 후퇴시키고 탄소 거래 메커니즘을 도입하고서도 정작 국내 비준을 하지 않은 미국 정부와 국회에 이번에는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민중의 힘으로 극복하자고 깃발을 꽂고 있다.

두 번째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미 코펜하겐 실패를 위로부터의 기후 협상이 초래한 바닥을 향한 경주의 결과로 인식한 기후 정의 진영이 올해 탄생시킨 대안적인 기후 총회인 '코차밤바(Cochabamba) 민중 총회'의 정신과 주장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2막의 하이라이트는 제도권의 본격적인 기후 협상 이합집산의 시기에 맞춰서 부상하는 기후 정의 주체들과 직접 행동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공정하고 야심차고 구속력 있는 협상(FAB Deal)'을 다 같이 달고 있지만 단일한 입장은 아니다. 기후 운동의 최대 연합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칸쿤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최소화하고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총회를 위한 '초석 쌓기(building blocks)'로 판단하고 있다.

더 급진적인 기후정의네트워크(CJN)는 회의장 안과 밖에서 분노를 나타내며 움직이고 있지만 예전보다 생동감이 떨어져 보인다. 단, 멕시코 전역에서 출발한 비아 캄페시나를 중심으로 한 농민·민중단체의 카라반 활동으로 칸쿤 기후 정의는 회의장 밖에서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 10만의 기후 정의 행진 그 이상의 감동은 이미 멕시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곧 칸쿤에 입성할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고 있을 기후 정의 리얼리스트들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이와 별도로 한국 정부의 독선과 아집에 가까운 녹색 외교전은 단연 압권이어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기후 변화 취약국의 절절한 피해를 전하는 부스들 사이 명당에 자리 잡은 한국 정부의 부스는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징하듯 최첨단을 달린다. 그런데 그 내용이 국내에서 그렇게나 말 많고 탈 많은 '녹색 성장' 홍보부스인 것이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연출된 4대강 사업과 원자력 사진들, 그것들을 진두지휘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 2012년 기후 총회를 유치하는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정부 대표단(단장 :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이곳 칸쿤에 있기에, 한국의 녹색 성장이 전 세계 기후 변화 대응에 앞장서고 있음을 광고(그린 워시)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찬우 환경부 국제협력관은 "코펜하겐에서 훼손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신뢰가 회복돼야 구체적인 감축 논의도 가능하다"며 "구체적 재정 지원 내용에 관한 합의가 신뢰 회복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선진국이 먼저 보여야할 책임과 보상 문제는 차치하고, 국내에서 4대강을 비롯한 녹색 성장 논란으로 신뢰와 리더십을 입에 담는 것조차 어불성설인 정부가, 하물며 어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를 줄여주는 브로커가 될 수 있겠는가.

총회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기후 협상의 비관과 기후 정의의 낙관 모두를 경험하고 있다. 왜 이 먼 곳까지 기를 쓰고 와야 했는지, 그러면서도 기후 정의 주체들의 역능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대 문명지에서 새로운 문명의 청사진이 탄생할 것인가, 아니면 흔적만 남고 사라진 문명처럼 칸쿤은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품을 수 없이 "Can'tCun"이 될 것인가.

특히 이곳 칸쿤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공간이다. 2003년 WTO에 항의하는 농민 시위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경해 열사가 자연스레 기억나기 때문이다. 7년이 지났어도 전 세계 소농과 민중은 여전히 아니 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옥스팜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9개월 동안에만 2만1000명이 기후 관련 재앙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수억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기후 정의 두 글자를 품에 안고 이곳에 집결한 이들은 코펜하겐에서처럼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기후 협상의 성공으로 재정의돼 버린 재정, 기술, 삼림 분야의 임시방편적인 결과가 아니라 기후 부채 채무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나온다면, 현재와 같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공유 비전과 의무 감축에 대한 바람직한 결정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그나마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한다!"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칸쿤=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기사원문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20308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