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NGLISH  |  HOME  |  SITEMAP

    활동마당

 
작성일 : 10-12-18 17:03
[언론기사] [Weekly 경향]선진국은 ‘유엔 페어플레이’ 잊었나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9,358  

[줌인]선진국은 ‘유엔 페어플레이’ 잊었나

2010 12/21위클리경향 905호

ㆍ교토의정서 흔들기로 기후변화 책임 회피 개도국 감축에만 집중

기후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둘째주에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기후전쟁은 일본 대 볼리비아의 대리전 양상을 뗬다. 알바(ALBA·중남미 지역 좌파블록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 국가들은 선진국이 교토의정서 2차 이행을 선언하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공격했다. 볼리비아 유엔 대사 파블로 솔론은 “자연재해로 전세계에서 매년 30만명이 죽고 있다”면서 “이것이 ‘대학살(genocide)’ 아니면 뭐겠는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라고 일갈했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알바 국가들에 협상 교착의 책임을 묻는 선진국의 공세를 전환코자 한 것이다. 또한 G77국가(개발도상국 모임)들과 연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며, ‘기후정의’를 주장하는 원주민·농민·환경·풀뿌리·사회단체들과 함께 협상장 안에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다방면에서 세를 규합하고 있다.

12월 9일 열린 고위급 회의에서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대학살을 중단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책임과 기후정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12월 7일 오후 시작된 고위급 회의에 맞춰 주요국 장관들이 속속 도착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개막 행사에서 “우리는 모든 이슈에서 최종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전된 모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기후협상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에 완벽한 합의에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금번 회의를 초석 삼아 내년 남아공 기후총회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자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겠지만,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 총회에서부터 이와 유사한 연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피구에레스 역시 흔들리는 국제탄소 레짐(묵시적 합의)을 강화시키는 데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칸쿤 협상이 모든 국가의 단기적 이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면 모든 이들의 장기적인 안녕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 말을 경청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미국을 비롯하여 교토의정서 흔들기로 기후변화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선진국들이다. 이것이 바로 ‘유엔 페어플레이’의 조건이다.

개도국, 조속한 감축결정 강력 요구
군소도서국가(AOSIS)와 개도국 대표들은 이미 겪고 있는 피해상을 나열하며 조속한 감축 결정과 재정 공약을 이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아프리카는 단지 2%만을 배출하는데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과테말라 대통령은 “20년 후에 자손들이 칸쿤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우리의 답은 칸쿤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전향적인 태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협상에 적극적인 유럽과 달리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이 소속된 엄브렐러(Umbrella) 그룹은 여전히 ‘코펜하겐 협정’만 운운하면서 개도국의 감축을 구속하는 ‘국제적 협의 및 분석’(ICA)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코펜하겐 협정은 <위키리크스>의 폭로 기사를 통해 개도국과 NGO의 공분을 낳았는데도 말이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작년 이맘때 부결된 코펜하겐 협정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은밀히 회유와 강압에 나섰던 미국의 공작이 사실로 들통났다. 기후재정으로 최빈국들을 우군으로 만들고, 알바 국가들을 고립시키는 ‘더러운’ 전략이 폭로된 것이다.

협상 둘째주 들어 한산했던 협상장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부 대표단을 제외하고 비정부기구 참가자들은 고위급 회의장에 입장하는 데 제한을 받는다. 칸쿤 메세에서 문 펠리스로 이동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표단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칸쿤이 코펜하겐의 복제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몇몇 국가들끼리 모이는 별도의 회담과 문서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데, 의장국인 멕시코는 12월 6일 공식적으로 ‘히든 텍스트’와 ‘비밀협상’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을 위해 비공식적인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현재 40~50개에 이르는 양자간, 그룹별 이합집산 과정에서 텍스트만 십수 개가 나돌고 있다고 한다. 협상 내용과 협상 과정이 코펜하겐과 닮은꼴이다.

칸쿤은 코펜하겐의 복제판이 되나
미국과 캐나다는 많은 NGO들과 일부 개도국들로부터 ‘잘못된 해결책’으로 비판받는 ‘시장 메커니즘’을 강하게 밀고 있다. 그 중 산림훼손 방지(REDD+) 채택과 청정개발체제(CDM) 확대 이슈는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흥개도국 의무감축 논란에 묻혀 최종적인 결정은 미뤄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장기재정의 투명성 제고, 기술이전 메커니즘과 적응위원회 설치 의제에 대해서는 단지 ‘고려한다’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중국과 미국 등 선진국간 주고 받는 거래에 따라 나머지 재정·기술, 산림 등 의제 합의사항을 포함하는 결정문(Decisions) 형태로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교토체제 2차 이행을 거부하는 일본 및 선진국들과 나머지 국가들 간에 1차 이행 연장 및 차기 총회로의 논의 연기 같은 절충안으로 봉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코펜하겐과 같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채 단지 ‘유의한다’로 끝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칸쿤 협상 과정 중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은 ‘균형’이었다.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균형, 완화와 적응의 균형, 그리고 재정·기술, 산림방지, 능력형성 등 주요 의제간 균형 등 대부분의 정부 협상가들이 즐겨 쓰는 단골 메뉴다. 선진국은 개도국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의미에서, 반면 개도국은 의무감축과 자체감축의 투 트랙을 유지하는 의미에서 서로 다른 균형을 원한다.

그런데 선진국의 균형 추구에 ‘차별화된 책임’이라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대원칙이 유실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탄소 레짐에서 세력 균형으로 탄생한 최선의 합의가 교토의정서였다면, 코펜하겐 협정은 세력 균형의 한계를 나타냈다. 칸쿤 결과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 2050년 중장기 비전은커녕 현재의 교토체제가 만료되는 2012년 벼랑 끝에 몰려서야 제2의 포스트 의정서에 도달할 수도 있다. 

2011년 남아공 총회에서 역사적 결정을 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각국 입법·행정 절차에 따라 국내 비준을 거치는 과정이 1년 만에 가능할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기후 레짐의 비대칭적 균형상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돌파구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에 참석한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정부가 아닌 민중으로부터 나왔다”며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하라는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가 결국 정치인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대중행동을 선동했다. 비록 정치적인 발언일지라도, 기후협상은 세계 시민의 기후행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정답을 전달한 것이다. 순수한 국가간의 협상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멕시코 칸쿤·이정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기사원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012161547041&code=117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서울시 삼개로 15-10 (4층) [04172] *지번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203-2
    전화 : 02-6404-8440  팩스 : 02-6402-8439  이메일 : mail@ecpi.or.kr  웹사이트 : http://ecp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