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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04 14:23
[언론기사] [에큐메니안] 내가 꿈꾸는 그곳 라오스, 라오스 사람들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937  

내가 꿈꾸는 그곳 라오스, 라오스 사람들 
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 이야기 (1) 


평화롭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 최빈국

라오스는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버마(미얀마)로 둘러싸인,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한 가운데 있는 나라다. 바다가 없지만 풍요로운 매컹(Mekong)을 1/3이상이나 차지하고 있고 한반도보다 조금 더 넓은 땅에는 인구가 700백만으로 우리의 1/10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세계 분쟁 뉴스나 하다못해 해외토픽에도 날 일이 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라오스는 몇 해 전 미국의 유력 신문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소개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라오스 이야기가 텔레비전으로 종종 보인다. 어제도 ‘짝퉁 명품’을 폐기하지 않고 가짜 상표만을 제거해 라오스로 보낸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라오스 이야기는 이처럼 여행관련 아니면 ‘봉사’, 개발원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라오스와 한국의 교류만 보더라도, 라오스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을 의식해서라도 필요할 수 있는 정치와 문화, 학술 분야는 수치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그나마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경제, 무역 분야 역시도 그 규모가 아세안(ASEAN) 10개 국 중에서도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로 작다. 이 급증하는 경제, 무역 분야도 정부의 원조와 차관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 2008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선정 된 것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으니 아직 덜 변했을 때 가보라는 이유에서였고, 또 그 급속한 변화의 이유는 2000년대 초반 집중된 외국의 개발원조 사업 때문이었다.

라오스는 최근 한국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가 규정한 최빈개도국이다. 필자가 2007년부터 2년 동안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 파견된 것도 이 때문이었으며, 거기서 마냥 행복하게만 살다가 단원으로서의 활동 말고 다른 지원, 태양광발전기로 라오스와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라오스의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수치와 순위보다 더 중요한 라오스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라오스 진짜 소개는 라오스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누구를 먼저 해야 하나? 음…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겹쳐 보인 소녀

이름이 ‘너이’란다. 우리말로 하면 ‘작은 년이’다. 본래 긴 이름 대신 짧게 애칭을 부르기가 보통인 라오스에서, 다섯 명중 하나는 ‘너이’다.

너이는 싸이냐부리(Xayaboury, 라오스 서북부 지역) 읍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서너 군데 마을을 지날 즈음 버스에 올랐다.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운전기사에게 무어라 부탁을 했고 너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작은 가방 하나만 꼭 쥐고 서있었다. 또 몇 마을을 지나 내 옆자리에 앉아서도 너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너이가 처음 말문을 연 것은 또 몇 마을을 지나고 나서였다. 여기가 어디냐고. 외국인인데다 더욱 이 길은 처음인지라 나는 통로 건너편 아저씨에게 다시 물어봤다.

너이는 이후 마을을 지날 때마다 그 이름을 물어봤고 나는 또 건너편 아저씨에게 확인해 알려 주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긴장이 좀 누그러졌는지 너이가 나의 이름을 물어왔다. (내 이름은 ‘씰리펀’, 행운 또는 상서롭다는 뜻이다. 라오스어를 처음 배울 때 라오스국립대 교수께서 지어준 것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나도 이것저것을 물었다. 나이는 열두 살.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학교를 나왔단다. 나왔다? 음… 어딜 가냐니까, 친척집에 간단다. 무슨 일로 가냐니까, 그냥 놀러간단다. 그럼 언제 돌아 오냐니까, 계속 거기 있을 거란다.

대화가 이쯤 되니 너이도 그제야 비로소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나에게 무언가를 물으려고 하던 찰라, 다시 어떤 작은 마을에 두어 명이 타고 내리고 버스가 출발 할 때, 너이가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을 급히 기사 아저씨께 던졌다.

그 마을이었다. 너이는 다른 무엇 챙길 것도 없이 달랑 가방 하나를 들고 먼지가 뽀얀 신작로로 내려섰다. 갑자기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너이, 너이!”

버스가 떠나가라 너이를 불렀다. 나는 후다닥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손닿는 대로 찾은 것을 쥐어주었다. 겨우 사탕 몇 개가 든 봉지.



라오스에서 초등학교는 5년제. 만 다섯 살에 들어간다. 시골선 유급도 흔하고 결석도 대수롭지 않은 일. 너이는 초등학교만 졸업했거나 중학교를 중퇴하고 친척집으로 일을 하러 또는 그렇게 살러 가는 길이었을 게다. 서양인 아닌 같은 동양인이긴 하지만 읍내에서라면 라오스어를 웬만큼 한다 해도 내가 외국인인 것은 대번 알아채는 일. 그러나 너이에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국인이기보다 말하기가 조금 서툰 가까이 사는 다른 소수민족일 뿐이었을 것이다.



3년 전 내가 싸이냐부리 읍내서 살 때, 늘 가던 식당 종업원들 대부분은 잘 사는 읍내 친척집으로 살러 온 너이들였다. 그러나 사연은 같았어도 그들은 어른이었고 너이는 겨우 내 어깨에 닿는 자그마한 몸집. 본적은 없이 5,60년 전 어머니들의 힘든 삶의 여정으로만 듣던 것이 오늘 너이에게 겹쳐 보였다. 라오스 재생에너지 현장조사 여행 중이던 2011년 1월 말이었다.  

큰 이모로 불리는 주한라오스대사 부인

2년 간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을 마치고 2009년 3월 귀국했다. 힘들게 ‘봉사’를 마치고 왔다는 보람보다 라오스 사람들과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그 동안의 일기를 모아 책으로 냈다. 따라서 읽을 순 없겠지만 진짜 책을 보여주고 싶은 독자들은 당연 라오스 사람들이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주한라오스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관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 한국서 유일하게 라오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라오스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절박함이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조심스레 들어서니 친절한 한국인 직원이 먼저 맞아주었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왔음에도 다음 일정으로 바삐 나가시는 와중 대사님도 잠깐 뵐 수 있었다.


참사관, 서기관들 모두 사진으로나마 책 내용을 가늠해 보려는 듯 관심을 보였는데, 놀랍게도 대사 부인은 몇몇 뜻은 몰라도 한글을 읽기까지 하셨다.  부인은 라오스를 소개하는 책 자체에 대한 반가움에 더해 책을 낸 사람을 만난 것에 무척 기뻐하셨다. 부인은 한글을 배우고 있었고, 한국에 관한 책을 내고 싶으셨기 때문이었다.

대사 부인을 책이 아니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때문에 다시 뵙게 되면서 우연히 1등 서기관이 부인을 큰이모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몇몇 라오스 유학생들도 그랬다. 지금까지 대사 부인을 이르는 적절한 라오스 말을 몰라 쓰긴 썼지만 마담(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지위 높은 여자를 이를 때 쓴다)이라고 부르는 게 편치도 않았기에 그 서기관에게 물어봤다. 마담도 괜찮지만 자기들처럼 ‘빠’라고 부르란다. ‘빠’는 큰이모라는 뜻이다.

라오스에 여전히 모계사회의 전통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경험으로도 라오스는 모계사회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사고방식, 생활양식이 많이 남아있다. 도심에서도 매일매일의 새벽은 맨발인 스님들의 탁발에서부터 시작되고, 우리에게 아저씨가 더 이상 삼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처럼 일반적인 호칭으로도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많이 쓰인다. 사실 한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친척인 경우가 많다. 라오스어 자체에 가족, 친척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무척 세분화되어 발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라오스는 문자뿐만 아니라 고유의 숫자까지 가지고 있다.) 

대사 부인은 그 지위에서 적극적인 대외활동은 물론 대사관 살림, 직원들, 유학생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친근함까지 가지고 계시니 ‘큰이모’라는 호칭은 정말 딱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한 놀라움은, 내남없이 외국인이어도 아무 상관없이 이 커다란 가족이 되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것!

소수민족 마을 고향을 잊지 않는 교육부 공무원

훔판은 라오스 교육부 공무원이다. 2009년 주한라오스학생회 회장이어서 라오스 산골학교 태양광발전기 지원 사업에 도움을 청하면서 알게 되었다. 훔판은 라오스 서북부 시골에 주로 한정되었던 나의 인식을 새로이 넓혀주었다. 

훔판은 라오스의 문화수도, 북부의 중심 도시 루앙파방(Luang-Prabang)에서 매컹을 거슬러 배를 타고 네 시간을 가야하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30여 년 전 아직 라오스의 지배적인 민족 라오족들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 마을에 새로 생긴 절의 스님 한 분과 자기 가족을 제외하고는 다른 소수민족이 마을 사람들인 소수민족 마을에서 자랐다. (문화가 다른 40여 소수민족이 있는 만큼 불교는 지배적인 민족의 종교일 뿐 다른 소수민족은 각각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강변이지만 두메의 산악지역이어서 마을은 가난했고 훔판 가족도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하고자 하는 훔판을 절에다 맡길 수밖에 없었단다. 마을 절의 스님은  중등학교 이상을 가르칠 수 없게 되자 훔판을 수도에 있는 큰 절로 보냈고, 훔판은 큰 절에서 살면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절은 지금까지도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수행하고 있다.) 
 
   훔판은 고향 마을 (당연히 다른 소수민족인) 처녀와 결혼을 했고 중앙정부 교육부 공무원이 되어 한국에 유학을 와 있었지만 고향 마을의 어려움을 잊지 않았다. 내가 본 싸이냐부리 지역 말고도 라오스의 산골학교, 시골학교들에 전기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하고, 풀잎으로 지은 교사(校舍)나마 면했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읍내가 아니라면 대나무편으로 벽과 기둥을 세우고 갈대로 지붕을 올린 교실이 보통이다.



자기 고향마을 같은 곳은 지금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게 보통이고, 고작 전등 하나 켤 수 있는 ‘다이남(초소수력발전기)’ 한 대 가지고 있으면 큰 부자라고 했다. 그런 다이남은 물이 없어도 물이 너무 불어도 쓸 수 없었고, 자칫 감전 사고를 일으켜 위험하다고 알려주었다. 한국서 모금이 잘 되면 자기 고향마을에도 꼭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라오스로 돌아갔다.

모금이 잘 되어 지원이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훔판 때문에 훔판의 고향 마을,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라오스 산골들의 열악한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다. 훔판의 긴한 도움으로 모험에 가까운 현장조사를 무사히 마치고 수도 위양짠(Vientiane), 훔판이 지금 사는 곳도 볼 수 있었다.

훔판은 교육부 공무원답게 (라오스에서는 공무원이든 일반 기업이든 전업 의무를 지울 수 없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여가 적기 때문이다. 교사든 의사든 2007년 경 공무원 월급은 50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귀국 후 학원을 열었다. 영어・컴퓨터 학원이지만 컴퓨터는 사무용까지 해서 넉 대가 고작이어서 서너 명 학생이 한 대 컴퓨터를 함께 썼다. 영어도 교재가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4개 반으로 나누어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고아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수강료를 받지 않았다. 역시 다른 직업을 가진 선생님들의 열의와 학생들에게 필요한 질 높은 교육을 하겠다는 훔판의 열정은 우리 야학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훔판은 또 내게 당부했다. 산골학교에 태양광발전기 지원 사업이 잘 이루어지고 나면 도시 학교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이 글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 활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태양광발전기를 매개로 너이, 이모, 훔판들이 살아가는 라오스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훔판의 당부처럼 관심은 사랑은 계속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계속)   

이영란 님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과)에 있으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 동안 라오스 북서부 싸이냐부리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 기사원문 :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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