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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04 14:34
[언론기사] [에큐메니안] 좋은 개발원조, 나쁜 개발원조, 이상한 개발원조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21,446  

좋은 개발원조, 나쁜 개발원조, 이상한 개발원조 
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 이야기(2) 


개발원조의 만국박람회

라오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가 규정한 최빈개도국이다. 국제연합(UN)의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개발원조의 헌장으로 작용하는 반면 실제 개발을 지도(?)하는 가이드라인과 평가기준은 조금 좁은 범위, 원조공여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가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원조를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기준, 최빈개도국(LLDCs)이니 저중소득국(LMICs)이니 하는 목록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 근래엔 원조의 효과성을 중시해 이를 기준으로 원조대상국들을 평가하는데 라오스는 원조효과가 ‘좋은 나라’에 속한다. 보통 원조 효과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나라는 원조가 절실한 나라보다는 베트남처럼 이미 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나라들일 수밖에 없기 마련. 이렇게 문제가 있는 개념이지만, 나는 라오스를 고려한 원조 효과성은, 정치나 자연재해 같은 외부요인이 적어 원조를 통해 기대한 바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절충해(?) 이해하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2007년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서 현지훈련을 받을 때 주라오스한국대사관에서 실시한 라오스개황 특강을 통해 라오스가 일반예산의 형태로 원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나라 안에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세금을 배분할 때도 ‘일반’ 보조금으로 주는 것은 꺼린다. 이런 저런 중앙정부의 필요를 조건으로 달아야 하고 생색을 내야 하니 가능하면 ‘특별’ 교부금으로 한다. 착한 원조선진국들과 라오스 사이의 신뢰와 그 신뢰를 지키는 약속은 그만큼 굳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그래서 라오스에는 온갖 나라의 개발원조기구들이 들어와 있다. 국제적인 개발기구, 민간단체들은 물론이고, 사실상의 선교단체들도 그 한참 이전부터 공식 비공식 활동을 해왔다.

프랑스, EU, 오스트레일리아

라오스는 베트남과 같이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라오스는 타이에 주둔한 영국과의 완충지로서만 소극적으로 관리되어 온 탓인지 프랑스의 색깔이 그다지 강하게 배지 않았다. 다만 2000년대 초반까지 중등학교에서 배우는 외국어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는 것이 흔적이라면 흔적일 것이다. 그래선가 역사를 보면 과거 식민제국이 피지배국가 개발원조에 깊이 개입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세종로 같은 곳에 프랑스 대사관이 왕궁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외에는 소란스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라오스 서북부의 소읍 싸이냐부리, 내가 살던 집에 2년 전 먼저 와 살았던 사람이 유럽적십자 직원이었던 ‘콘 프랑(직역하면 프랑스 사람이란 뜻이지만 보통 서양 사람을 뜻한다. 재밌는 건 라오스어와 거의 같은 말을 쓰는, 프랑스 지배를 받지 않은 타이에서도 서양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이것을 쓴다)’이었다. 그는 싸이냐부리 읍내에 상수도 지원공사의 책임자였다. 유럽적십자사는 2007년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5월엔 우리학교로도 와서 적십자사의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해 홍보하는 행사를 주도하는 사람은 라오스 사람이었다. 그 무렵에는 다른 유럽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 없이 라오스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싸이냐부리가 소읍이긴 하지만 라오스 서북부의 도청소재지이니 작지만 국제단체 사무실들이 있다. 싸이냐부리 도립병원엔 크게 쑨매래덱(모자병동)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국제적인 어린이 지원단체) 사무실이 병원 행정동 한 구석에 있었다. 그 사무실 주인은 예순은 되어 보이는 다소 퉁명스런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 활동가였다. 그때 벌써 싸이냐부리에서만 10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는 모자병동 말고도 내실 있는 산부인과 소아과 진료를 위한 프로젝트들을 해냈다. 한국에 와서, 세계보건기구(WHO)에 제출된 라오스 (싸이냐부리를 포함한) 북부 의료관련 보고서가 장기간에 걸친 관찰과 아주 구체적인 자료로 무척 훌륭하다고 평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히 장담하건데 보고서를 작성한 주인공은 이 할머니가 분명하다.


케어(CARE)인터내셔널 사무실은 나의 단골식당에서 멀지 않았다. 간판에 있는 이름은 인터내셔널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관할이었다. 2007년 봄여름 케어인터내셔널은 라오스 지역 조류독감 예방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점차 현지화 하여 외국인은 가끔 올 뿐이고 대부분 라오스 사람들이 일을 했다. 그 가끔 사무실을 들리는 외국인이 역시 프랑스 사람이었다. 싸이냐부리 비행장에서 라오스 말을 잘하는 서양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가 케어 활동가였다. 그도 라오스에서만 7, 8년을 있었고 라오스 사람과 결혼해 라오스에서 주로 살고, 가끔 프랑스를 오간다. 그의 활동 반경도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만큼이나 넓어서 싸이냐부리를 거점으로 라오스 서북부, 라오스 말도 잘 안 통하는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산골을 누비며 소득증대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인으로 케어인터내셔널에 지원해 케어 오스트레일리아 소속으로 버마, 캄보디아에서도 활동을 했다. (확인할 순 없지만 최소한 국제단체들 내의 구분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와 가까운 서양 선진국으로서 맡은 역할이 있는 것 같다) 정말 다국적이다. 그는 또 내가 한국인이라고 해선지 북한에도 케어가 있다며 (현재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그곳에서도 활동해 보고 싶다고 했다.

라오스와 동병상련으로 프랑스를 흘겨보던 내 시선을 그나마 곱게 만든 것은 이런 활동가들 덕분으로 산골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었던 삼색기 때문이었다.

일본, 중국, 한국

2007년 라오스 수도 위양짠은 거의 건설 공사장 자체였다. 도로포장 공사부터 하수도시설 공사까지 몇 블록 되지 않는 도심은 일장기가 붙여진 건설기계, 자재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를 가나 잘 보였다. 라오스국립대학교 정문 앞에 가장 첨단으로 지어진 건물도 일본이 지은 것이었다. 눈에 띄고 굵직한 토목공사는 대부분 일본이 하는 일이었다.



그때 한국은 분야는 교육이니 의료니 해도 결국 기념사진 찍을 건물 지어주는 것으로 일본 따라 하기도 벅차게 애쓰는 상황이었고 중국은 컹찐(중국 물건이란 뜻으로 싸구려 좋지 않은 물건이라는 비하하는 말이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국가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아직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잘 못 본 일본의 진짜 개발원조는 그렇게 날림이지 않다.



일본은 안 보이는 일도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해왔다. 일본국제협력단 단원들 현지어 교육훈련을 위해 라오스어 학과 교수들을 2,3년씩 초빙하는 것부터, 반대로 장기 프로젝트에 따라 일본 전문가들을 파견하고, 각급 교육청과 함께 일본에서 하는 교사 장학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심지어 싸이냐부리 같은 시골 지역까지 기상관측소를 짓고 데이터 수집 전송을 위한 시스템까지 구축해주었다. 물론 이 기상자료는 라오스와 일본이 같이, 아니 일본이 더 잘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라오스가 중국판이다. 이젠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중국정부가 원조를 조건으로 라오스에 대규모 이주민 수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이미 라오스는 동남아시안 게임 주최를 위한 주경기장을 무상으로 받는 대신 중국인 10만 가구를 수용했다. 2011년 위양짠은 도심 가까이까지 중국인들 거주지가 확산되어 있었다. 이런 무차별적인 물량공세는 물품 원조방식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 중남부 도시 빡산의 고등학교에는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물론 게서 쓸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격 교육방송 수신시설을 설치해 주었단다.


2010년 11월 한국 서울에서 G20정상회의가 열렸다. 진의와 상관없이 G20정상회의를 국민에게 선전하는 텔레비전 광고에는 라오스에서의 교과서 지원 사업, 라틴아메리카에서의 IT 교육사업, 아프리카의 식수지원 사업이 나오고. 또한 2011년 4/4분기 국제개발협력과 관련해서 세계 최대 규모로 3년마다 열리는 4차 원조효과 고위급 회의(High Level Forum)도 한국에서 개최된다.

한국은 이제 달랑 컴퓨터 놓아주고 학교 지어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가르칠 선생님을 만들고, 그 선생님들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넘어 왜 컴퓨터 교육이 필요한지, 어떤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를 라오스와 한국, 세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컴퓨터 교사육성보다 컴퓨터 대수 채우기에 급급한 한국인데 고위급 회의라, 우리 계속 누구의 이력서 한 줄 더 쓰는 데 동원되는 것은  아닐지……     



타이, 베트남
 
서강대 동아연구소에서 상영하는 타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 그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라오스 말을 썼다는 것이다. 말뿐이 아니라 라오스 문자까지 썼다. 마지막에 나온 편지에 쓰인 글자들은 분명 내가 읽을 수 있는 라오스 문자였다.
 
라오스와 타이는 언어가 8,90% 유사하다고 한다. 라오스와 면한, 내가 본 영화에 나온 타이의 북동부 지역은 아예 이싼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며 내가 배운 라오스어와 전혀 다르지 않은 말을 쓴다. 그만큼 라오스와 타이는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정치체제가 달라도 라오스의 일상은 타이의 시골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이 텔레비전을 늘 켜놓다 시피 즐기고 문자가 조금 달라도 어려움 없이 타이 물건을 쓰고 똑같아도 크고 좋은 것은 농산물을 수입하기도 한다.    

라오스는 베트남과 함께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만들고 독립운동을 하고 혁명에 성공해 사회주의 정부를 세웠다. 그래서 당의 높은 간부가 되려면 베트남으로 유학을 가야하는 게 보통이다. 아직 경제권력보다 정치권력이 강한 라오스에서 그야말로 출세를 하려면 베트남과 인연을 맺어 두는 것이 정석이다. 베트남도 각 대학에 베트남 소수민족에 대한 할당처럼 라오스 학생에 대한 몫까지 두어 무상으로 교육을 시켜준다.
 
예전엔 경제․문화는 타이와 정치․사회는 베트남과 교류가 많았다면 이젠 그런 구분보다는 베트남과 근접한 동부는 베트남과 타이와 가까운 서부는 타이와 접촉이 편리한 만큼 교류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웃한 나라와는 싸우는 게 상식인 우리와 달리 이들은 서로를 돕는다. 베트남은 여전히 한국의 원조를 받는 저소득국(OLICs)이고 타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원조를 받았던 저중소득국이지만 두 나라 모두 이미 그 이전부터 라오스를 지원해왔다. 비록 베트남이 유지관리 교육 없이 한국처럼 단속적으로 지원한 루앙파방 주변 소수민족 마을의 태양광발전기는 이제 전등하나 켜기가 어려울 정도로 낡고, 타이가 라오스 최초로 수도 위양짠에 놓아준 열차노선은 자기 쪽 접경도시로부터 라오스로의 확장에 불과한 것 같은 미흡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국 같은 선진국도 아니면서 같은 어려운 처지를 돕는다는 것이 어디 생각만이라도 쉬운가?



눈에 띄지 않는 활동가들과 공여국

착한 원조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유엔 지정 공여국’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은 라오스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이들은 라오스에서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낡았지만 전통 있고 회의장도 갖추고 있는 호텔에 묵을 때였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차림의 여자들 이십 여 명이 삼삼오오 로비로 나왔다. 푯말을 보니 무슨 여성지도자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스웨덴이 작은 글씨로 끄트머리에 씌여있었다. 2년 동안 살면서, 그 이후로도 종종 라오스를 가봤지만 그게 다였다. 나름 신경 써 찾고 있는 내게도 착한 선진국들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일반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얼굴 드러내고 라오스에 직접 와 뭘 가르치고 감독할 것도 아닐 것이다.



얼굴을 드러내면서도 착한 원조도 보았다. 아직 햇볕이 뜨겁지 않은 아침, 등교를 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장애인을 몇 분 보았다. 그들은 휠체어에 연결된 막대를 좌우로 움직여 바퀴를 굴렸다. 물론 전동 휠체어(이는 초기 보급 가격도 부담스럽겠지만 무엇보다 충전을 하거나 전지를 사는데 돈을 지불할 수 없는 라오스 장애인에게는 외려 애물단지가 되었을 것이다)보다 수고스럽지만 바퀴를 직접 손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해 보였다. 앞서 여유롭게 달려가는 휠체어 뒤에 일장기가 빛났다.

여전히 싸이냐부리에 살고 있을 그 케어인터내셔널 활동가는 라오스 사람들도 모르는 라오스의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라오스 오지의 현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열악한 현장에서 짧은 시간 소수민족의 언어들을 익히기 위해 팔에, 손등에 (손바닥에 쓰면 땀이나 물에 지워지기 쉽다고) 들리는 대로 그 소리를 기록했단다.



라오스에서 돈이 드는 에너지는 불가하다는 것을 그 막대를 움직여 가는 휠체어를 구상한 일본 활동가는 알았을 것이다. 이들이 진짜 활동가들이다. 이런 것을 두고 진정한 개발원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이영란 님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과)에 있으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 동안 라오스 북서부 싸이냐부리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 기사원문 :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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