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NGLISH  |  HOME  |  SITEMAP

    활동마당

 
작성일 : 11-05-26 11:55
[언론기사] [에큐메니안]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연대의식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20,622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의식 
개발원조기획연재-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 이야기(3)


달걀 바나나가 그리워 라오스로 간다

며칠 전 같이 공부하는 한 중국 학생이 방학에 뭐 할 거냐는 내 물음에 수박이 먹고 싶어서  집에 가 있을 거라고 답했다. 보통 기대하는 대로 한국에서의 어려운 유학인데 방학에도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가 아니고 집에 가겠다고 하는 황당한 대답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그 이유가 서울의 생활비가 부담스럽다는 무거운 이야기도 아니고 부모님과 가족이 그립다는 따뜻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수박이 먹고 싶어서라니!

그러나 나는 곧 그 수박이 그렇게 맹탕이 아닌 것을 알았다. 나도 라오스의 막무앙(망고) 향기가 그립고, 작고 달고 포슬포슬한 막꾸와이 카이(달걀 바나나)가 먹고 싶어서 라오스로 가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오스보다 거의 몇 십 배가 되는 한국의 가격이 우선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비싸더라도 맛이라도 같으면 사무치게 그리운 날엔 눈 딱 감고 사먹을 수도 있으련만…

아무튼, 사람 일이란 게 그런 거 같다. 그저 수박이 먹고 싶어 중국의 집에 가고 싶고, 달랑 달걀 바나나 생각에 라오스가 그리워지는 것. 똑같이 내게 거창한 사명이니 국제협력, 개발원조니 하는 것으로 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을 설명해 내라는 요청은 무척 어렵다. 태양광발전기는 어떤 사명이나 개발원조로부터가 아니라 그저 라오스에 지천인 달콤한 막낟(파인애플)같은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에서 절로 태어난 것이니 말이다.

장학생으로 다른 학교 학생을 추천하는 우리학교 선생님들

2년 동안 라오스에 살면서 본래 파견된 한국국제협력단 단원으로서의 역할 외에 몇 가지 활동을 더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하나가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의 장학생 지원 사업이었다. 연합회는 한국국제협력단과 별개의 그야말로 단원들의 모임으로서 각국에 파견된 회원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일정 수의 현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해마다 하는 사업이지만 현장에 파견된 지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은 2007년에는 장학생을 추천할 자격이 없었다. 2008년 꼬박 1년이 지나 추천 자격을 얻었어도 라오스를, 어느 정도라도 내가 사는 동네라도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연히 집 얻고, 밥 먹고, 라오스어 배우는 것까지 도와주지 않는 게 없는 우리학교 선생님들께 역시 도움을 청했다.




한국의 장학생 선발 기준은 성적과 집안 형편이 되는 게 보통. 그러나 이는 라오스에는 맞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학교를 다니지 않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명목으로 지원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성적이야 어떻든 일단 학교를 다니는 학업에 열의가 있는 학생 중에 어려운 친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우리학교 학생 중에서를 얘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라오스 관련된 요청엔 무엇이든 척척박사인 선생님들이, 우리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좀 오래 고민을 했다. 설마 학생들 상황을 자세히는 모르시나하고 걱정이 들 무렵 선생님들이 말했다.

“씰리펀(필자의 라오스 이름), 우리학교에 가난한 학생은 없어. 반나냐오(논이 긴 마을) 학교에 분나리(여학생 이름)가 좋겠는데.”

맞다. 수도에 비하면 시골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도청소재지인 읍내였다. 우리학교를 둘러싸고 도청이 있고, 제일 큰 절이 있고, 시장이 있고, 유일한 우체국과 두 개뿐인 은행, 군교육청과 도교육청이 있다. 거의 모든 것이 우리학교 바로 주변에 있었다. 나는 우리학교가 ‘강남 8학군’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분나리는 읍내 밖, 비가 오면 바닥이 질척거리는 외양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중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생. 그렇지만 역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만큼 (더욱 여학생이니) 외려 웬만큼 산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그 학생을 추천한 것은 분나리가 손발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분나리며 분나리 가족 상황, 분나리 성적은 물론 분나리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고 가는지, 글씨는 어떻게 쓰는지, 그래도 손가락이 없어서 혼자 못하는 것은 뒤로 긴 머리를 묶는 것뿐이라는 것 등등 모르는 게 없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도 나의 ‘당연히’와 달리 선생님들의 ‘당연히’엔 포함되어 있었다.

더 어려운 소수민족학교를 이야기하는 소수민족학교 선생님

2009년 1월 임기를 마치기 직전에 또 하나의 지원금을 따냈다. 역시 한국해외봉사단원엽합회가 회원들의 활동에 지원하는 30만원이었다. 분나리의 경험에서 배운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엔 처음부터 우리학교가 아닌 싸이냐부리의 (소수)민족학교 를 지원할 작정이었다.



싸이냐부리 도(道) 민족중등학교는 전체 학생수 400여 명, 그 중 고아가 122명, 소수민족 학생이 196명으로 이들은 모두 기숙사에 살았다. 나머지는 80여 명은 가까이에 다닐만한 일반학교가 없어서 민족학교라도 다녀야 하는 보통 학생들이다.

‘무상교육’ 체제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자는데 돈이 안들 수가 없는 일. 더욱 (화폐)소득이 거의 없는 고아, 소수민족 학생들이라면 이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학교가 받는 정부지원은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에게 한 달에 9만 낍(우리 돈 9천 원 정도)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것은 정말 한 달 밥값도 안됐다. 당연히 다른 지원이 없으면 학생들은 공부는커녕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도움이 절실하니 교무실 입구엔 매년 갈아 붙이는 후원자 명단이 있다. 유럽적십자, 덴마크, 멕시코 어느 단체, 룸투리드(Room to Read, 저개발국가 학생들에게 도서와 독서공간을 지원하는 단체), 도지사, 무슨 위원회 위원장부터 그저 이름으로만 쓰여 있는 사람까지.

얼핏 지원이 넉넉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지원규모가 큰 외국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교육하고만 직결된 것으로 교실, 도서실, 영어론 된 책이거나, 너무 크고 좋아서 빈틈없이 놓아도 라오스 교실엔 20개나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1인용 책걸상 같은 것이나,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학교에 교실보다 더 좋은 수세식 화장실 지어주는 것 등이 대부분이었다.

당장 급한 먹을 것 입을 것, 자질구레해 생색은 안 나지만 학생들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여기엔 단서를 달지 않은 현금 지원도 포함된다. 학생들이니 생활비, 또는 용돈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은 그나마 사정을 아는 라오스 사람들이 챙겨 돕고 있었다.


달러가 급등했을 때여서 30만원은 23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기숙사생 300명에게라도 1달러씩도 안 되는, 간만에 한 끼 고기반찬 값이라도 될까 말까? ‘사정을 아는 라오스 사람들’ 방식을 좇아 민족학교로 갔다. 민족학교 교장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어떻게 쓰면 좋을지 물었다.

“우리학교 보다, 반싸멛(싸멛 마을, 싸이냐부리 서쪽 고산지대)에 있는 중학교 사정이 더 어려워요. 거길 도와주세요.”

이젠 눈물이 났다. 우리가 축사나 온실을 덮는 압축 천을 이불 삼아, 돼지비계로 볶은 야채 반찬이면 호강인 밥에, 달거리 하는 여학생들도 오로지 씻을 곳이라곤 학교 옆을 흐르는 개울이 다인 여기보다 더 사정이 어려운 곳이 있을까! 이런 와중에도 자기보다 더 힘든 데를 도와주라고 말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태양광발전기가 반짝하고 태어난 곳

더 어려운 학교가 있다는 반싸멛은 읍내에서 차를 타고 가는 데만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 대중교통은 없고 웬만한 군용차나 오토바이가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오지였다.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묻거나 관찰할 수 있는 현지조사는 고사하고, 30만원 가지고는 거기 갈 수 있는 차 한대 빌리는 값도 안 될 판이었다.

척척박사인 우리 선생님들이 나섰다. 교장선생님이 싸이냐부리 도교육청과 상의를 했다. 도교육청은 마침 그곳 반싸멛 학생들에게 옷을 가져다 줄 일이 있어 군청에 수송 협조를 요청했다고 했다.


거기에 우리가 합류하면 되게 되었다. 도교육청에 있는 선생님들은 그 학교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고산지대여서 무엇보다 추운 게 문제이니 기숙사생들이 쓸 이불을 사가는 게 좋겠다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군청으로 가 긴 설명을 마다 않고 애써 승인을 받아주었고, 학교 살림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이불가게 주인과 흥정하는 것을 넘어 좋은 일 함께 하자는 설득으로 이불을 아주 싸게 사주셨다.

일은 계속 커졌다. 이불을 가지고 갈 날을 며칠 앞두고 우리학교 학생들이 한 주머니 씩 쌀을 모았다. 이걸 팔아서 여자 선생님들은 반싸멛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떡과 1박 2일로 거기를 다녀와야 할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거긴 식당이 없을뿐더러 어느 집에서 민박을 하더라도 한꺼번에 7명의 식사를 만들 만큼 여건이 녹녹치 않다는 것까지 선생님들은 알고 있었다) 만들어 싸주었다.



다른 동료 단원들도 돈을 보태고 마침 한국에서 여행 온 친구까지 뜻을 모았다.



돈으로 들어간 것만 따져도 애초 230달러로 시작한 일은 두 배가 넘는 540달러로 불어났다.

물은 물론 전기 한 줄도 들어오지 않는 라오스 반싸멛, 고산지대 칼바람이 그대로 스미는 마을회관에서 담요를 몇 겹으로 덥고 누웠다. 코끝이 시렸다. 세상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매운 밤을 보내고 싸들고 온 이불과 학용품들을 내려놓으며 오기 전에 물었어야 할 뒤늦은 질문을 했다. 반싸멛 학교 교장선생님은 내가 물어주기를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발전기를 제일 먼저 꼽았다. 여기였다. 태양광발전기가 반짝 빛나며 태어난 순간이! (계속)



* 기사원문 :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415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서울시 삼개로 15-10 (4층) [04172] *지번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203-2
    전화 : 02-6404-8440  팩스 : 02-6402-8439  이메일 : mail@ecpi.or.kr  웹사이트 : http://ecp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