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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9 13:36
[언론기사] [오마이뉴스] [기획- 메콩의 햇빛①] 난 왜 라오스를 사랑하게 되었나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9,875  

"우린 부자니까..." 여기 '강남8학군' 사람들은 달랐다
[기획- 메콩의 햇빛①] 난 왜 라오스를 사랑하게 되었나


오마이뉴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착한여행과 함께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발전을 지원하는 공동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부터 꾸준히 라오스 산간학교에 태양광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 사는 메콩강 유역 산간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10km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이들 산간학교 기숙사에 지원되는 태양광 시스템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햇볕발전 이야기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메콩의 건기 강나루 풍경.ⓒ 이영란

나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함께 진행하는 라오스 산간학교 태양광 지원사업의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여름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라오스의 강마을 '후와이찟'으로 가는 길이다.
북쪽으로 메콩(라오스에서 메콩은 물의 어머니란 뜻이다)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배를 탈 수 있는 나루터에 도착했다. 여기 나루에서 배를 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루앙프라방에서 코끼리로 유명한 싸이냐부리(Xayaboury, 라오스 북서쪽에 위치한 도道의 이름. 도청이 같은 이름의 싸이냐부리 군郡에 있다)로 오고가는 모든 것들이 배를 이용한다. 화물트럭, 버스, 오토바이부터 물소, 닭, 돼지들까지 말이다.

강마을 '후와이찟'으로 가는 길

동행하는 싸이냐부리 에너지광산국 직원 뚜이(뚱뚱하다는 뜻이다. 진짜 이름은 '푸턴'이지만 보통들 커서도 친근하게 어릴 적 별명을 그대로 쓴다)가 우리를 실어다줄 배 물색에 나섰다. 뚜이는 에너지광산국에서 재생에너지 분야를 담당하는 두 명 중 한 명으로 에너지광산국의 막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뚜이가 영락없는 라오스 시골 아저씨 얼굴을 한 사공을 데리고 나타났다. 아저씨는 나름 확고한 표정을 하고선 왕복 30만 낍(라오스 화폐단위. 3월 5일 현재 환율은 1달러= 7860낍)을 달라신다.

'30만 낍? 왕복이기는 해도 좀 비싼데…'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느라 머뭇거리는데 뚜이가 시나브로 나선다. 가서 오래도 아니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고, 이 한국 사람들이 아저씨 이웃마을 후와이찟 학교에 태양광발전기를 도와주러가는 길이니 아저씨도 뱃삯을 좀 깎아줘서 이들을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오! 뚜이, 마냥 풋내기인줄 알았는데 제법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면 열에 아홉은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당연히 사공도 그런 라오스 사람. 뱃삯은 어렵지 않게 25만 낍으로 낙찰됐다.


▲ 라오스 후와이찟 마을 초입ⓒ 이영란

뚜이가 기특하고 또 사공의 마음도 어여뻐 흐뭇하게 미소를 흘리며 배에 오르는데 또 다른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어, 이게 누군가? 우리의 목적지 후와이찟 마을의 이장님이다. 강나루 마을에 사는 친척집에 왔다가 다시 그 친척과 꼬마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흔들거리는 조각배에 몸집이 큰 사람은 혼자 앉아도 좁을 판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는 둘씩 쪼그려 앉았는데 아빠와 여섯 살 난 아들, 이장님은 셋이 꼭 안은 듯이 붙어 앉았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

메콩을 거슬러 오르기 전에 기름을 넣으려고 배가 건너편 강나루의 주유선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 돌리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 이장님 목소리는 뒤쪽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많이 보고 싶었다, 이번엔 토끼 아가씨(지난 여름 과학창의재단 후원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할 때 함께 온 전북대 학생이다. 라오스 어린 학생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우리도 별명을 만들어 썼다)는 안 오느냐, 특히 우리 집 아기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그때 하룻밤 이장님 댁에서 묵으면서 토끼 학생이 집안의 꼬마들과 정말 잘 놀아주었다), 여전히 마을 학생들은 '곰 세 마리' 노래(내가 라오스어로 번역해 준 것을 열심히 외우고 연습해서 그 학생들의 공연은 어른들한테도 인기 만발이었다)와 율동을 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한다 등등. 이장님의 회고가 끝없이 이어진다.

정 깊은 라오스 사람들, 게다가 전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두메산골의 이장님은 순진무구 그 자체다. 이야기를 할수록 기억이 생생해 지는지 눈시울까지 붉히신다. 그래, 나도 그랬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

2007년 1월 나는 처음 라오스에 왔다.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것이다. 지리교사를 꿈꿨고,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그다지 적지 않은 지역을 여행했기에 웬만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수도 이름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라오스는 웬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단원으로 선발되면 한 달 동안 합숙훈련을 한다. 이때 파견되는 국가에 대한 공부를 한다. 애초 내가 지원했던 나라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콩고민주공화국이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곳의 비상한 정치사회 환경을 고려해 유엔평화군 대피방송을 놓치지 않도록 라디오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파견을 일주일 앞두고 콩고의 상황이 진짜 비상해졌다. 나의 파견지는 라오스로 바뀌었고 그때서야 나는 라오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 의식


▲ 라오스 싸이냐부리 읍내 중심에 있는 '믿따팝(우정) 중학교' 학생들. ⓒ 이영란


▲ 읍내 학생들과는 차림새부터 다른 라오스 산골마을의 학생들 ⓒ 이영란

그리고 나는 라오스에서 두 해를 살면서 책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다른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제일은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 씀,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 의식이었다. 그래서 라오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랬다. 내가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 '믿따팝(우정) 중학교'에 장학금을 주겠다는데,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굳이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 자기가 알고 있는 주변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다른 학교 학생(읍내 외곽의 중학교를 다니는 손과 발이 없는 여학생 분나리)을 추천했다. 또 한국에서 지원금을 주겠다는데, 이번에도 선생님들은 우리학교는 부자라며(우리학교는 싸이냐부리 읍내 중심지에 있다. 우리로 치면 강남 8학군이랄 수 있다), 고아들과 멀리 읍내로 유학 와야 하는 소수민족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리곤 나를 그 학교로 데려갔다. 그런데 우리학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고아와 소수민족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저기 멀리 산속(서쪽으로 타이와 접경한 빠이, 크므, 타이담 등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해발 1500미터 이상의 고산지역)에 우리보다 더 사정이 어려운 학교가 있으니 그 학교를 도와 달라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은 더욱 커졌다. 한국서 주는 지원금은 고작 30만원, 바람찬 산골학교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에게 이불 한 장씩도 못 사주는 작은 돈이었다. 한국 단원들의 엄마 역할을 맡아주신 부와판 선생님이 나섰다. 시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불가게 주인에게 부와판 선생님은 뚜이처럼 말씀하셨다. 씰리펀(나의 라오스 이름이다. 상서로운, 행운이라는 뜻)이 저기 멀리 산골학교를 도와주려는데 주인도 이불 값을 좀 깎아줘서 씰리펀을 도와주라고. 이불가게 주인은 그 돈에 꼭 맞춰주었다.
무려 20퍼센트 이상을 싸게 해준 거다. 근데 이걸 저 멀리 산골학교까지 운반할 찻삯은 어쩌지? 우리학교 교장 완텅 선생님이 나섰다. 교육청으로 군청으로 찾아다니시더니 마침 며칠 후 그쪽으로 가는 군용트럭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우리가 얹혀갈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주셨다.
 
출발하기 전전날 우리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쌀 한 봉지씩을 가져왔다. 출발 전날엔 그걸 모아 산골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떡을 만들고 우리가 먹을 밥을 짓고 나머지를 팔아 만든 돈으로 반찬거리까지 준비했다. 멀리 그 학교가 있는 마을엔 식당은 고사하고 변변한 가게도 없으니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직접 싸가지고 가야 했던 거다. 이불을 부려놓고 그날 밤 칼바람이 스미는 산꼭대기 마을회관에 누웠다. 코끝이 시리고 또 시렸다. 그래서 더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메콩의 심장, 라오스


▲ 라오스 학생들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 이영란

기름을 채우고 난 배가 속도를 높인다. 기억이 '저기 멀리 산골학교'까지 이르러 시린 코 끝에 물보라 튄다. 건기여도 결코 작지 않은 메콩 위를 모터 하나에 의지해 달리는 조각배는 나뭇잎만 같다. 물살이 빠른 데서는 통통 튕기는 배가 뒤집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40여 분을 거슬러 올라가며 만나는 오늘의 메콩은 지난 여름과 또 다른 느낌이다. 검은색 이암일까, 아님 철광석? 강 가운데 드러난 바위들이 지질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메콩이 품어와 쌓아놓은 모래언덕은 그대로 메콩 사람들의 파릇파릇한 텃밭으로 쓰이고 군데군데 대나무 장대에 달아놓은 그물을 살피는 어부들이 여유롭다. 여기까지 사람 발길이 닿는가 싶은 곳에도 사납지 않은 화전들이 일궈지고.

그런데 한가로운 내 눈에 걱정들이 걸린다. 저 어부들 앞으로도 물고기들을 그대로 잡을 수 있을까? 저 오밀조밀 텃밭들은 앞으로도 계속 비옥할 수 있을까? 중국의 메콩엔 이미 몇 개 댐이 들어서 있다. 계획되고 있는 것도 또 몇 개다. 국가 발전전략으로 '아시아의 배터리'를 천명한 라오스 역시 9개의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지금 나의 라오스 고향 싸이냐부리에 그 첫 번째 댐이 한창 공사 중이다.

과연 내가 사랑하는 라오스 사람들, 태양광발전기로 불을 밝히며 공부한 우리 후와이찟 마을의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무엇으로 밝힐 것인지? 그들이 과연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근데 그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싸바이디 라오스> 저자

*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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