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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12 23:41
[언론기사] [오마이뉴스] [기획- 메콩의 햇빛⑨] 라오스 청년 '아이'를 통해 본 그들의 행복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0,128  

명문대 의대생은 왜 시골 보건소를 선택했나
[기획- 메콩의 햇빛⑨] 라오스 청년 '아이'를 통해 본 그들의 행복

오마이뉴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착한여행과 함께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발전을 지원하는 공동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부터 꾸준히 라오스 산간학교에 태양광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 사는 메콩강 유역 산간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10km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이들 산간학교 기숙사에 지원되는 태양광 시스템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햇볕발전 이야기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라오스를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라오스도 금방 변할 걸."
라오스를 와 본 사람들도 이야기한다. "라오스도 금방 변하겠구나!"

전자는 일반적으로 라오스를 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좋다 나쁘다가 아닌 중립적인 듯하나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이야기다. 후자는 라오스를 개발도상국으로 일반화하지는 않으나 결국 자신이 보고 느낀 긍정적인 라오스의 현재가 일반화된 개발방식에 따라 빨리 나쁜 쪽으로 변할 것을 우려하는 탄식에 가까운 설명이다. 라오스에 좀 살아 봤다고 자부하는 나는 "라오스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 작은 증거를 라오스 청년 '아이'에서 찾는다.

성적도, 마음씨도, 외모도 최고인 '아이'

'아이'는 2007년 내가 월세를 살았던 집의 둘째 아들이다. 아이의 본명은 '찓따껀'. 하지만 모두 그를 아이(우리말 아이처럼 평탄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라오스 성조로 앞 음절에 힘을 주어 말하도록 되어 있다.)로 부른다. 라오스에서 아이는 오빠, 형이라는 뜻이지만 무척 광범위한 호칭으로 쓰인다. 별명이든 본명이든 이름을 모를 때 꼬마 남자 아이들을 부를 때 아이라고 쓴다. 조금 큰 청소년을 부를 때도 쓴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남자에게도 쓴다. 할아버지는 아니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에게도 쓴다. 그러니 나는 '아짠'들을 제외하고는 만나는 라오스 남자들의 99%를 모두 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싸이냐부리 시장 후문에 위치한 '아이' 엄마가 운영하는 약방.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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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1990년 생이다. 너무 흔한 애칭을 갖고 있지만 아이는 무척 특별한 소년이었다. 싸이냐부리 읍내의 유일한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교외 대회에 나가서도 늘 1등을 했다. 아이가 공부만 잘해서 특별한 건 아니었다. 아이는 농사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장작패기, 밥 짓기, 빨래하기, 집안 청소하기, 집주변 풀베기, 울타리 고치기, 개 밥 주기, 닭과 오리 보살피기, 심지어 월세 사는 나와 나의 집 안전관리까지 엄마와 아빠가 하는 모든 집안일을 거의 대신했다. 대부분의 라오스 소년소녀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는 그 중에서도 정말 모든 일에 열심인 착한 소년이었다.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했다.

2007년 여름, 그래서 아이는 수도 위양짠에 있는 라오스국립대 의학대에 입학했다. 전국 주요도시 네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는 국립대는 라오스에서 유일하게 학위를 줄 수 있는 학교였다. 우리로 치면 경쟁자가 없는 서울대라고나 할까. 이때 의학대는 우리처럼 의대와 약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의학대 과정 5년을 졸업하면 약사가 될 수 있었다. 의사는 거기에 더해서 2년이나 4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대학을 지원할 무렵 나의 영향인지 아이는 개발사회학과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러나 아빠의 강력한 바람에 따라 예전부터 가기로 한 길, 의학대를 선택했다.

맨 처음 나는 아이가 의학대를 간다니 그러면 당연히 의사가 되려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약사가 될 거란다.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재차 물어도 아이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묻는 내게 아이는 특유의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되려면 5년보다 더 오래 가족과 떨어져서 공부해야 해. 나는 빨리 돌아와 가족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약사가 좋아."

라오스에선 교사처럼 의사도 공무원이다. 의사가 되면 국가의 인력계획에 따라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아이의 엄마는 약방을 하고 있었다. 라오스에서는 약사만 약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은 물론이고 보건소도 태부족인 라오스에선 민간의 약국들이 주민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별도의 수강료를 내고 일정 정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증명서가 있으면 약방을 개업할 수 있다. 의사가 아니라도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보건관계 공무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엄마의 약방을 물려받아 약사 면허를 가지고 그 약방을 운영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는데 고향 시골 약방으로 돌아온다?

라오스에 슬럼이 없는 이유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들어서 메말라 버린 하천의 모습. 철교 아래 버려진 조각배들이 이전에 이 작은 하천의 풍성했던 수량과 어로활동을 짐작케 해준다.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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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들에서는 어디서나 '이촌향도' 현상이 큰 사회문제인데 라오스에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라오스엔 선진국이고 개도국이고 간에 도시형성에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슬럼도 없다. 슬럼은 대규모 개발 사업들에 의해 자기 땅에서 쫓겨나거나 값싼 임금일지언정 보다 나은 화폐소득을 기대하며 고향을 떠난 가난한 농민들이 더 가난한 노동자와 도시빈민으로 추락하면서 형성되는 것인데, 라오스에선 아직 이런 유인이 없다.

물론 라오스에는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들이 많다. 댐으로 인한 수몰이 아니더라도 댐의 출수로(出水路) 변경으로 인해 급작스레 마르거나 침수되어 버린 농토와 강을 포기하고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의 근대적 학교제도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타의에 의한 규칙적인 노동과 그에 대한 보수로서의 임금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해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라오스에는 다수의 임금노동자를 일시에 장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산업이 없다.

제일 큰 제조업체라고 해봐야 라오맥주 회사인데 맥주제조는 거의 자동화 되어 있어 인력이 많이 필요치 않다.  라오스 남부 볼라웬(Boleven) 고원의 커피 플랜테이션 지역에도 빈곤한 농장노동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당연히 도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야채는 자급할 수 있는 각각의 농장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1만 명 이상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댐 개발, 도로나 교량 건설은 외국 업체가 하는 사업인 만큼 외국 노동자들이 들어와 일을 한다. 싸이냐부리 댐의 경우 1만 명의 타이 노동자들이 투입될 예정이며, 한국이 하는 건설 사업에도 당일치기 단순 작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베트남 노동자들이 고용되고 이들은 컨테이너나 양철 판으로 급조한 숙소를 건설현장에 짓고 산다.

출세하는 것보다 행복한 게 중요해

 라오스 청년 '아이'가 근무하는 싸이냐부리 군 보건소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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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교육을 통해 라오스의 엘리트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하층의 노동자와는 또 다른 이유로 아이는 '이촌향도'의 (우리가 생각하는) 시류를 거스른 것이다. 아이만이 아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가족 내력인지 아이의 누나도 라오스국립대 국제관계학과를 다녔다.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 도청 국제관계부서에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7년 나의 동료였던 아짠 '미노'의 누나도 마찬가지다. 아짠의 누나 역시 라오스국립대 전산전신학과를 졸업하고 귀향해 라오텔레콤 싸이냐부리 지사에서 일한다. 마찬가지로 라오스국립대를 졸업하고 먼저 귀향해 싸이냐부리 상수도국에서 일하는 우리학교 교장선생님 아들과 결혼했다.

라오스는 교사가 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학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교육전문대로 진학한다. 중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공립이어서 학비가 저렴하면서 전국 주요 도시에 골고루 퍼져 있어 지방 학생들이 유학하기가 그나마 쉽기 때문이다.

더욱 일반 공무원, 경찰, 군인, 공사 직원 등 공무원과 준공무원이 이 나라 직업의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기관이 없다보니 일단 교육전문대 졸업생이 진로를 선택하기에 용이하다.  내가 만나는 싸이냐부리 20-30대들은 대략 70% 이상이 교육전문대를 나왔다. 그리고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라오스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고등교육을 받았다 해도 도시에서는 아무리 많고 많은 공무원이라도 직업을 얻기가 어려워서 일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도시에서도 아기들은 쑥쑥 태어나고 라오스도 곧 2부제 수업을 해야 할 만큼 아이들이 쑥쑥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투자건 관광이건 개발원조건 라오스 사회를 곳곳을 정비하고 관리해야 할 일들은 도시에서 먼저 늘어나고 있다. 도시가 위험부담이 큰 만큼 기회도 많다. 힘든 만큼 대가도 크다.

그러나 내가 아는 라오스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기회를 얻고자 하지 않는다. 큰 대가를 바라 애써 힘을 들이고자 하지 않는다. '욕망이 멈추는 곳'이 맞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라오스 사람들의 욕망은 우리와 좀 다르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고 동료들과 재밌게 놀기! 이게 내가 직접 물어본 라오스 사람들의 욕망이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 꼭 무엇을 가져야겠다는 강박이 없다. 라오스에선 굶어 죽을 위험, 위협이 없다. 그래서 일도 노동도 편안하고 즐겁게 좋은 소리 들어가면서 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가을 아이는 귀향하자마자 싸이냐부리 보건국에 지원서를 냈나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지난 1월 싸이냐부리 군 보건소로 발령이 났다. 근무가 없는 토요일 일요일은 엄마 대신 하루 종일 약방을 본다. 평일에도 오후 4시 근무를 마치고는 늘 엄마 약방으로 온다. 착한 건 여전하다.

 엄살쟁이 할머니와 신중하게 혈압을 재고 있는 '아이'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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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프지 않게 해줘."
 "네, 할머니 잠깐만요. 제가 좀 볼게요."
  
일요일 아이가 약방을 찾은 할머니의 혈압을 잰다. 혈압 재는 것도 아픈 엄살쟁이 할머니의 여린 마음까지 다독거리는 품이 이미 노련한 약사 선생님이 다 된 것 같아 보였다.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싸바이디 라오스> 저자

*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6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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