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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19 19:59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제6호] 에너지 노동조합 이해 관계의 해법은?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9,602  

에너지 노동조합 이해 관계의 해법은?




지난 2월 1일 한국전력 본사 강당에서 열린 6차 전력산업기본계획 공청회는, 일부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환경단체와 노조의 단상 점거로 ‘파행’으로 얼룩졌다. 6차 기본계획은 2013년부터 2027년까지 향후 15년간의 중장기 전력수급에 관한 기본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 관심이 모아졌는데, 정부의 기본안은 발전설비 증설로 전력대란을 막고 이를 대부분 민간 화력으로 충당한다는 것이었다.

화력발전 증설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터이니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고, 이를 민간투자로 한다면 요금 인상 등 공공성 약화가 우려되며, 핵발전도 기존의 증설 계획을 철회하는 것은 아니어서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모두에서 불만과 우려를 갖는 내용이었다.

공청회가 시작되기 몇 분 전에 신속하게 현수막과 피켓이 펼쳐지면서 점거가 이루어졌는데, 단상에 올라선 이들은 실은 몇 개의 집단이었다. 전력노조, 발전노조, 시민환경단체, 지역에서 올라온 주민들과 진보정당 사람들로, 한 쪽이 먼저 단상으로 뛰어나가자 예기치 않은 연합 점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각 집단이 외치는 구호에는 약간의 강조점 차이가 있었다. 발전노조는 민간 대기업의 발전 산업 진출과 특혜가 갖는 문제를 주로 비판했고, 전력노조는 분할된 전력산업의 재통합과 전력의 안정적 수급체계 구축을 강하게 주장했다. 환경단체에서는 삼척과 영덕에 예정된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취소할 것과 밀양과 청도의 고압송전탑 건설 공사를 중단하라는 요구와 함께 6차 기본계획 자체의 백지화를 외쳤다.

두 전력부문 노조가 공히 공기업의 공공성 이슈를 제기한 것이었지만, 전력 공기업의 고유영역이 침해되지 않고 규모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환경단체와 진보정당 사람들은 비록 ‘한 무대’에 서서 발언했지만, 핵발전 반대와 기후변화 대응 촉구가 더 우선적인 관심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색깔의 차이는 점거 와중의 한 헤프닝으로 드러났는데, 전력노조의 간부 두 명이 당시 마이크를 잡고 있던 내게 다가오더니 밀양 송전탑 구호는 더 이상 외치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주문을 해왔던 것이다. 안 그러면 여기서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당시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는 밀양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한 달 가까이 농성을 이어오고 있었거니와 송전탑은 반드시 알려야하는 문제였으므로, 그러한 주문은 들어줄 수 없다고 하였고 옥신각신 말다툼이 일었다. 다행한 일인지 때 마침 주최 측에서 점거로 인해 공청회가 무산되었음을 발표했고, 각자 자기 집단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전력노조의 입장은 사측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미 많이 알려진 밀양의 반인권적 국가폭력에 대하여 또 다른 폭력으로 동조하는 것이어서 적잖이 불쾌히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밀양 송전탑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신고리 3.4호기 핵발전소에서 생산할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것으로, 한전이 이미 착수한 사업은 어쨌든 차질이 없었으면 한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전력노조의 이러한 태도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 가진 상대적으로 노사협조주의적인 노선으로도 설명될 수 있겠지만, 공공성이나 환경적 가치에 관하여 크게 보아 한 목소리이되 자세히 보면 자신의 입지에서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각 집단의 차이도 잘 살펴야 함을 알려준다. 발전노조나 환경단체들도 에너지의 환경성과 공공성, 민주성에 대해 수미일관한 인식과 대안을 갖고 대응해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탈핵 선도국이라 불리는 독일은 노동조합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에 관한 모범적 사례가 주로 알려져 있지만, 이제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노동조합도 해당 산업의 처지와 특성에 따라 입장이 크고 작게 갈리곤 했다. 독일 그린피스가 2007년 펴낸, “기후보호 를 가로막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독일 내 주요 조직의 우두머리들이 에너지 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슈뢰더 전 총리는 2000년에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권을 이끌면서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하고 탈핵 과정을 이끈 것으로 평가 받지만, 퇴임 후에는 러시아의 가스를 발트해를 관통해 독일로 공급하는 북유럽가스관(NEGP) 컨소시엄의 이사장을 맡았다.

그런데 그린피스의 보고서는 노동조합들도 경제와 환경의 타협에서 배운 게 없다고 고발한다. 예를 들어 IG BCE(독일 탄광, 화학 및 에너지노조)의 의장 휘베르투스 쉬몰트는 2000년부터 에너지 대기업인 E.ON의 이사도 맡으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대비하여 모든 에너지 공급원을 열어두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특정한 국내 에너지원이 폐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국내 에너지원은 아직 독일에 풍부하게 매장된 역청탄과 갈탄을 의미한다. 또한 독일 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보조금으로 인한 요금의 부담을 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나아가서 EU의 기후 정책은 ‘에너지 산업에서 일자리 파괴 프로그램’이며 유럽의 산업황폐화를 낳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독일의 공공부문 통합노조인 Ver.di의 창립노조이기도 한 ÖTV(공공, 운수, 통신노조)는 1988년에 핵에너지의 규제된 퇴출을 선언했고 1996년에 이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2001년부터 Ver.di의 의장을 맡은 프랑크 브리스케는 2005년에 노조 내에서 이 합의를 뒤집고, “에너지와 환경 정책에서 보다 현실주의적 접근”을 이야기하며, 역시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핵에너지와 석탄이 퇴출되어 비용과 요금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브리스케는 거대 에너지 공급자들 지지한 이유로 노조활동가들가 환경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를 받고 내키지 않은 퇴임을 했다고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12월에 새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편지를 보내 ‘환경친화적인’ 신규 화력발전소에 투자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고, IG BCE와 IG Metall(금속노조), IG BAU(건설, 농업 ,환경산업 노조)역시 메르켈에게 EU의 규제 조건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공동 서한을 보냈다.

2월에는 베를린에서 독일 발전소에 대한 불공평한 배출 규제 반대 시위가 Ver.di 주최로 열렸는데, 연사로 나선 브리스케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국내 에너지원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하며 갈탄이 가장 신뢰할만한 전력원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노조의 입장이 참으로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전력산업 노조들, 그리고 독일의 산별노조들의 복잡한 태도는 <에너지 명령>의 저자 헤르만 셰어가 지적했던 탈핵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거짓 합의’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들 재생에너지가 중요하고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기존의 전력 수급방식과 비용, 고용에 변화가 없는 핵/화석 에너지와 재생에너지의 공존을 노린다는 것 말이다. 재생에너지는 아직 충분히 실현되기 어려우므로 전통적인 에너지 수단을 개선하여 당분간 쓰면서 모종의 순탄한 징검다리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의 세금이 비효율적 재생에너지에 투여된다, 요금이 상승한다 등의 부정적 이유의 논리들이 재생산된다.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끊임없이 유예시킨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지역마다 추진된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행동계획”이 큰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는 단체장과 지역 민간기업, 공기업, 에너지 협동조합 등 수많은 주체들이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노동조합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거대 산별노조들이 점차 재생에너지법에 찬동하고 이해를 같이 하게 된 것은 전통적 전력 부문보다 재생에너지 부문이 훨씬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특히 그 성장세가 가파르기 때문이었다. 2000년 이래로 독일에서 대략 2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풍력발전기, 태양광 판넬과 바이오매스 설비 생산과 공급 부문에서 창출되었다. IG Metall이 탈핵운동에 더욱 동조적으로 된 것은 이러한 부문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이 시나브로 많아진 탓이 컸다. 물론 이러한 재생에너지 부문의 신규 일자리들이 갖는 저임금, 저조한 노조 조직률, 고용 불안정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난 4월 19일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시민들의 출자로 ‘에너지 협동조합’이 창립했다. “옥상마다 시민햇빛발전소, 가정에는 시민에너지절전소”를 구호로 삼고 에너지 생산과 효율화를 지역사회에서 직접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은평구의 많은 시민단체, 환경단체, 진보정당, 생협들이 결합했지만 함께하는 노동조합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노동조합에게 전력산업 사유화는 먼 일이라도 가깝게 다가오고 지역과 현장의 에너지 전환은 가깝지만 아직 먼 일이다.

부산 고리 핵발전소의 한수원 조합원들로부터 밀양과 청도의 어르신들, 한전과 하청업체의 직원들, 대전 원자력연구원의 해고노동자들, 경주 방폐장 현장의 노동자들, 전력노조와 발전노조의 조합원들,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기업주들과 서울시민들, 이런 당사자들이 함께 만나서 어떤 수가 있을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다면 무슨 결론이 나올까? 물론 이런 자리를 정부나 자본이 먼저 마련해 줄 리는 없겠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진보신당 녹색위원장

* 이 칼럼은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함께하는 품] 제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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