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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27 15:51
[언론기사] [오마이뉴스] 기후변화의 '불편한 진실'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9,789  


기후변화의 '불편한 진실'
[서평] <나쁜 에너지 기행>


  <나쁜 에너지 기행>-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지음(이매진 출판사)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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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책 <나쁜 에너지 기행>을 읽고서 한참을 멍하니 지냈다. 오뉴월에 걸린 감기 탓도 있겠지만 길고 험한 여행을 다녀 온 뒤의 후유증 같은 것이 밀려온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을 훑어보다가 이런 느낌은 흡사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똥파리>를 본 후의 기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폭력의 세계를 섬세하고 진지하게 그려낸 두 영화와 기후변화와 에너지를 주제로 한 <나쁜 에너지 기행>이 비슷하다니?

저자 중 한 명이 서두에서 '우리 시대의 파리대왕'을 언급한 걸 보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파리대왕>은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필자는 파리대왕에 빗대 현재 기후변화 현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무인도에 갇힌 소년들마냥 자신을 위해 허우적댄다. 그리고 부자는 영국 장교의 눈으로 전세계 빈자들을 바라본다. 적어도 기후변화를 둘러싼 상황은 우리가 아직 <파리대왕>의 무인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무인도 수준을 벗어나 현실을 보게 되었을까. 아니면 영국 장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기후변화는 구조적인 폭력의 문제'라고 했을 때 물음표(?)가 생기는 가, 느낌표(!)가 떠오르는가. 누구든 둘 사이에 어느 부분에 위치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가 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게 <나쁜 에너지 기행>의 목적이 아닐까.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라는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형국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 나쁜 영향을 직접 받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도 않고 자동차나 발전소, 공장도 없는 곳에서 산다.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감소, 태풍과 폭우,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사막화, 수자원 고갈 등으로 '기후난민'의 행렬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50년까지 최소 수억 명에서 수십 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기후난민을 보호할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가해자들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생산, 유통, 소비 시스템과 낭비 문화를 유지하면서 현대 생활을 향유하는 부유한 국가와 부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다루는 기후정치(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열을 올릴 뿐 이들에게서 피해자에 대한 대책 등 문제를 해결할 방안과 의지를 찾기는 어렵다.

이산화탄소 전체 배출량 1, 2위인 중국과 미국이 배출한 양이 전 세계의 43.2%를, 유럽을 합하면 전체의 57.3%를 차지한다. 한국을 포함한 배출량 상위 10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66.7%에 이른다. 반면에 나머지 210개 국가는 다 합쳐도 33.3%에 불과하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가들은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편으론 피해국가들도 점점 가해국가들을 닮아가려고 한다. 가해국가들은 이 과정에서 피해국가들의 자원을 철저히 수탈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또 다시 피해국가의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이 책의 2부 '슬픈 에너지 기행'은 이 구조적인 악순환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필리핀 이사벨라 주에는 바이오 에탄올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에 고통 받는 원주민들이 있다. 그리고 메콩 강에 건설되는 대규모 '수출용' 수력발전 때문에 쫓겨나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지역주민과 소수 민족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필요한 건 대규모 핵발전과 화력발전, 수력발전이 아니라 시골 마을 냇가에 설치된 소수력 발전과 산골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다.

이른바 '제3세계' 사람들을 우리는 대개 두 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하나는 그런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무시하고 깔보는 시각이다.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 관점 모두 구조적인 문제를 단순히 인간 윤리의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러한 시각은 기후변화가 가져온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

다시 '기후변화는 구조적인 폭력의 문제'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기후정의가 실현되려면 먼저 제3세계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 능력을 높이고 에너지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원조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보상의 문제다. 어쨌거나 그 사람들의 빈곤과 피해는 한국 같은 에너지 과소비 국가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단순히 값싼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았나. 가끔은 동정의 눈길로, 때로는 멸시의 눈길로 바라보지는 않았나. 우리가 그 현실을 야기한 가해자임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나.

이 책은 읽는 동안 당신은 불편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외면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기후변화라는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후변화는 폭력 느와르 영화가 아닌 불편한 진실이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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