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NGLISH  |  HOME  |  SITEMAP

    활동마당

 
작성일 : 14-01-24 15:03
[언론기사] [함께하는품] 루카스 플랜은 무엇이었나? (김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3,525  

루카스 플랜은 무엇이었나?


지난 2009년 7월, 영국 남부의 와이트섬에 소재한 베스타스 공장을 일군의 사람들이 점거한 일이 있었다. 베스타스는 덴마크의 풍력터빈 전문 제조 회사인데, 영국의 풍력 발전 증가를 예상하여 공장을 지었다가 수요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자 6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을 폐쇄하고 해외로 이전하려 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점거가 시작되자 많은 노동조합원들뿐 아니라 환경운동가와 좌파 활동가들도 연대에 나섰는데, 기후변화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노동권 보호라는 명분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베스타스 노동자들은 그 와중에도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한국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내와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진] 2009년 베스타스 공장 점거와 연대


<레드 페퍼>라는 영국 좌파 잡지의 편집인인 정치사회학자 힐러리 웨인라이트는 칼럼을 통해 이 점거 사례에서 1970년대 루카스 항공(Lucas Aerospace)의 경험을 떠올리며, 노동자의 연대와 실험이 더 넓고 깊어질 수 없을까를 묻는다.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루카스 플랜’은 무엇이었던가?


건축가인가 꿀벌인가

1960년대 후반에 설립된 루카스 항공은 루카스 계열사 중 주로 군수용 항공부품을 제조하는 회사로, 노동자가 많을 때는 1만 8천명에 달했다. 노동자들의 직종은 다양했는데, 특히 수학, 기체역학, 제어기술 등 전문기술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대량생산 보다는 소규모 정밀 엔지니어링 비중이 높았다. 생산품이 주로 NATO의 군비 증강 요구에 따른 것이니만큼 정부 자금에 대한 의존도 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루카스 항공에서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이 예고되자 노동자들은 대응을 시작했다. 그런데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이 단지 파업만을 준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었다. 우선 1971년 스코틀랜드의 어퍼 클라이드 조선소 (Upper Clyde Shipbuilders) 투쟁의 간접 경험이 있었다. 조선소가 경영 악화로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에드워드 히스 보수당 정부가 자금 지원을 거부하자, 어퍼 클라이드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가는 대신 공장을 점거하여 자주관리하는 워크-인(work-in) 투쟁을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분리 매각을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의 자유방임과 자유시장 정책에 일정하게 제동을 걸었고, 다른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보다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또 하나는 노동당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을 맡은 유명한 좌파 정치인 토니 벤과의 사전 교감이다. 현장 노동자 대표들이 작업장의 경계를 넘어 연합한 기구인 직장위원 연합위원회(shop stewards combine committee, SSCC)는 1974년 11월 토니 벤과 만남을 갖고,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노동조합이 일종의 자체적 대안 생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당시 노동당 좌파는 “대안경제전략(Alternative Economic Strategy, AES)”이라 불리는 사회화 전략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었고, 연합위원회이 구상은 개별 기업에 대한 공적 통제의 확대라는 취지에서 시도하던 정부, 기업, 노조 사이의 의무적 계획 합의(planning agreements)와 연결될 수 있었다.


[사진] 루카스 플랜을 주도한 마이크 쿨리


끝으로, 마이크 쿨리(Mike Cooley) 같은 선진 활동가들의 존재와 활동이 있었다. 루카스 항공의 컴퓨터 설계 기술자였던 쿨리는 노동의 결과물이 노동자와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해로운 생산물만을 만들어내고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소외되어 가는 산업사회의 구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건축가인가 꿀벌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콩코드 항공기의 엔진을 개발할 정도로 높은 기술을 가진 사회가 간단한 난방 체계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여 런던에서만 한 해 겨울에 980명이 얼어 죽게 만들고, 생산자로서의 개인이 소비자로서의 개인을 착취할 목적의 일회용 상품을 생산하는 괴상하고 어리석은 노동에 묶여 있다고 개탄했다. ‘꿀벌’이라는 비유는 다름 아닌 마르크스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쿨리는 거미나 꿀벌은 거미줄과 벌집을 단순히 반복 재현해서 만들지만, 가장 수준 낮은 건축가라도 자신의 상상 속에 먼저 집의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훌륭한 꿀벌보다 뛰어나다는 <자본> 1권의 구절을 자신의 책 첫 장에 옮겨놓았다.1)

어쨌든, 루카스 항공 사측의 경영 합리화와 해외 확장 및 군수산업 관련 정부 지출의 삭감 가능성 등 위기의 징후들을 느끼며, 연합위원회는 4천명 가량의 인원 축소에 맞서 싸웠던 1971년 직후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쿨리를 위시한 활동가들은 “벼랑에 내몰린 후”에 방어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믿을만하지 못하며, 또한 군수 부문 생산처럼 넓게 보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업들을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옹호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나누었다. 군수 항공 생산에서 민간 항공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민간 항공 역시 전망이 밝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합위원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으니,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이라는 개념이 그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나중에 “루카스 플랜”이라 불리는 협동 계획(corporate planning)은 회사가 경영 합리화 계획을 내기 1년 전에 과정이 시작되었다. 활동가들의 핵심 질문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상품들 중에서 우리의 설비와 능력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생산과 관련된 정보와 대안적 생산물 제안을 요청하는 설문지가 각 작업장의 노동자 대표들에게 보내졌고, 외부 전문가들에게도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달라는 편지가 180여통이나 전달되었다. 작업장에 보내는 설문지는 노동자들이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이해하고, 상품의 교환가치 뿐만 아니라 사용가치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들도 고민하도록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이라는 말에 대해 노동조합은 이렇게 정의했다.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유용해야 하며 일부 상류층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내에 존재하는 기술이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며 그것을 전 종업원과 지역사회에 이득이 되도록 개발해야 한다. 종업원 혹은 일반 지역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를 최소화해야 하고 환경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2)

3-4주가 지나자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합위원회는 이러한 제안들을 수집하여 여섯 개의 주요 생산범주로 나뉜 전부 1천여 쪽에 달하는 책으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특정한 기술적 세부 사항과 경제적 계산, 심지어 공학 도면들까지 포함되었다. 실용 가능한 구체적인 혁신제품의 아이디어가 150개에 달했고 그 중 일부는 시제품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들 제품의 목록을 보면 참으로 획기적인데, 예를 들어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의 특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동력 체계나 효율 좋은 풍력터빈과 히트펌프, 태양에너지와 연료 전지처럼 30여년이 지나 지금 실용화된 기술들이 일찍이 탐구되었다. 도로와 궤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용차량은 일관된 운송체계가 없는 영국의 시골 지역이나 발전도상국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한 새로운 상품뿐 아니라 기존 상품 중에서도 보다 저렴하고 손쉽게 생산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의 범주에 들어가는 상품들도 제안되었다. 가정용 신장투석기 같은 의료 기기들이 대표적이었다.
원거리에서 사람의 손 역할을 하는 텔레치릭(telechiric) 장치는 모든 공정을 자동화된 기계로 대체하려는 주류적 사고에 저항하면서도 노동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고려한, 숙련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은 제품이었다.
루카스 플랜 덕분에 연합위원회는 확실히 공세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었다. 경영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러한 대안 제품들을 생산하면 노동자들의 고용도 유지하고 더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논거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카스 플랜을 검토하자는 교섭 요구에 대한 사측의 반응은 예상가능하게도 일관된 거부와 무시였다. 한 편으로는 생산 결정과 관련된 것은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합위원회가 법적 근거가 없는 노동자 기구라는 것이었다.
1977년 2월, 마침내 회사는 세 곳의 사업장에서 20%의 잉여 노동력이 있고 대략 1,100명의 정리 해고가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교섭의 한계에 봉착한 연합위원회는 노동당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루카스 플랜의 의미에 대한 립서비스 이상의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산업부 장관에서 에너지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토니 벤도 힘이 달렸고, 노동당도 산업계와 각을 세우는 모험을 할 생각이 없었으며, NATO의 군수 산업 요구도 따라야 했다. 이렇게 노동당 정부에 매달리는 와중에 연합위원회의 현장 장악력은 시나브로 약화되고 말았고 루카스 플랜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도 식어 갔다.
영국의 공식 산별노조의 반응도 미지근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이유는 산별노조도 기존 노조의 골간 대의조직이 아닌 연합위원회의 비공식성이 불편했던 것과 함께 당시 집권 노동당과의 협력 틀거리를 흔드는 강한 입장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대안 생산 계획이 나와 있던 것이 노동조합에 힘이 되어 경영진이 함부로 해고를 단행하지 못했고, 덕분에 일부 일자리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루카스 플랜은 어쨌든 루카스 항공 내에서는 문서로만 남게 되었다. 1979년에 마가렛 대처가 집권하면서 정치 분위기가 바뀌자 루카스 항공의 지도적 활동가들이 쫓겨났고, 쿨리 자신도 노동조합 일이나 “사회 전체의 관심”에 너무 시간을 쓴다는 이유로 1980년에 해고되고 만다.


루카스 플랜과 정의로운 전환

그런데 루카스 플랜의 실험이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빨갱이 런던시장 켄 리빙스턴이 이끄는 노동당 좌파 그룹이 장악한 런던광역시의회(GLC)는 일종의 지방자치체 사회주의 전략을 시도하며 그 일환으로 런던광역시 기업이사회(GLEB)를 만들었는데, 쿨리는 여기에서 기술국장으로 취임하여 런던의 실업과 싸우고 기술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을 맡으면서 루카스 플랜의 꿈을 이어가고자 했다. 이 네트워크는 지역공동체 그룹과 대학들을 연계하여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제품과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것을 소기업과 협동조합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쿨리는 장애인과 취약 집단을 위한 제품 개발, 일종의 공정무역 시스템, 인간중심 생산 공정 설계 프로젝트 등을 지원했고, “인간중심 시스템(Human Centered Systems)” 개념을 심화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을 대처가 곱게 보고 있을 리가 없었고, 대처는 런던광역시의회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으로 답했다. 


[사진] 새로운 노조운동 루카스 플랜


그럼에도 루카스 플랜의 영향은 여러 곳으로 뻗어나갔다. 영국에서는 뉴캐슬과 맨체스터 지역의 여러 발전소에서 비슷한 ‘노동자 계획’들이 출현해서 열병합 발전 같은 대안 계획을 검토했다. 전차와 잠수함을 만드는 빅커스 군수공장의 노동자들은 파력 발전 시스템 개발을 요청했다. 코벤트리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의 직장위원들은 생태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석유연료 자동차에서 탈피하자고 요구했다. 1976년 협동 계획서가 출간될 때부터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큰 관심을 끌었고 유사한 시도와 실험을 낳았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진행되었던 과학기술자 운동과 과기노조 운동, 그리고 과학상점의 시도에 이르기까지 루카스 플랜은 큰 영감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루카스 항공에서 전개된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운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제품을 다른 바람직한 것으로 대체할 뿐 아니라 그 방법까지 의제로 삼는 데까지 나아갔다. 노동자 사이의 분할을 극복하고, 작업장과 지역사회의 장벽을 가로지르며, 노동자의 암묵적 지식과 능력을 존중하고 끌어내려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더욱 방어적으로 침잠하면서 이러한 급진성과 상상력이 잊혀져갔지만, 그래서 루카스 플랜은 더욱 아쉽게기억된다.   
최근 마이크 쿨리는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녹색운동의 성장과 노동운동의 갱신 필요성 속에서 35년이 넘은 루카스 플랜의 시간이 더욱 실제로 다가온다고 이야기 한다. “다시 한번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의 병원은 인력과 장비가 충분히 갖춰져 있고, 우리의 대중교통 서비스가 운행 횟수도 충분하고 안전하며 환경적으로 바람직하며, 우리의 주택이 안성맞춤으로 공급되고 잘 유지보수 되고 있어서 할 일이 없다는 말인가? 그저 한번 둘러보라. 도처에 해야 할 일이 널려 있다. 부족한 것은 상상력과 창조성과 이를 창조적으로 이용할 용기다.”
한국의 루카스 항공과 한국의 마이크 쿨리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숙제, 경제와 고용 위기 대응이라는 과제 속에서 지금 ‘정의로운 전환’과 대안적 생산을 이야기한다면 루카스 항공의 경험부터 돌아보는 것이 참으로 마땅할 듯하다. 


1) 마이크 쿨리의 <건축가인가 꿀벌인가?> 중 루카스의 협동 계획을 다룬 7장은 송성수 편,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녹두 (1995)에 실린 바 있다.
2) 나이젤 휘틀리, <사회를 위한 디자인>, 홍시.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 이 글은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함께하는 품] 10호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서울시 삼개로 15-10 (4층) [04172] *지번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203-2
    전화 : 02-6404-8440  팩스 : 02-6402-8439  이메일 : mail@ecpi.or.kr  웹사이트 : http://ecp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