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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5 12:25
[에정뉴스] [함께하는 품] 농업 전환을 고민한 두물머리 투쟁을 돌아보며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145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발행 <함께하는 품> 19호 (2015. 7.)에 실린 글입니다.

발전 대신 밭전!
농업 전환을 고민한 두물머리 투쟁을 돌아보며


마트에서 과일 살 일이 별로 없는지라, 오래 전부터 로컬푸드 운동을 개척해 온 허남혁 지역재단 먹거리정책교육센터장의 칼럼을 보고야 알게 된 사실이다. 지난 2월 설 명절 동안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포도는 칠레산이 아니라 100% 페루산이었다고 한다. 한-칠레 FTA로 인해 부쩍 흔해진 것이 칠레산 포도와 와인 그리고 홍어이기 때문에 그 즈음 마트에 나오는 포도는 당연히 칠레산일 것으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페루는 칠레 바로 위에 붙어있는 나라이니 그게 그거 아닐까 싶지만 사정을 들어보니 그렇지가 않다. 
페루는 위도상으로는 남회귀선 안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와 사막지대다. 해발 수천미터 안데스 산맥의 고산지대에서 잉카문명이 꽃을 피웠지만, 하천들도 급경사를 따라 흐르는 지형이라 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는 국토의 1%도 되지 않았다. 이런 페루에서 지금 포도가 재배되는 곳은 사막지대인 이카 지역으로, 칠레의 과일산업자본이 들어와 페루 사람들을 노동자로 고용하여 대농장을 경영하는 것이라 한다.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이 지표수와 지하수로 흘러들어온 것을 이용해 황량한 사막 산들 사이에 거대한 포도농장을 만든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외채문제 해결을 고심하던 페루 정부가 세계은행이 제안한 아스파라거스 수출 농업을 받아들이면서 사막지역 농업이 시작되었고, 2010년 경부터 수출용 포도 재배가 급격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막지역에서 행해지는 관개농업은 당연하게도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황사 발원지인 중국 고비사막에 아무리 물을 주어도 금방 말라버려 나무를 처음 착근시키기 어려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개농업으로 물을 많이 쓰는데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안데스 산맥의 눈도 점점 줄어들면서 이카 지역의 오아시스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고, 이제는 지역 주민들이 생계용으로 농사짓고 마시는 물마저 말라붙기 시작했다.  
허남혁 센터장은 전세계적으로 농지와 노동력이 저렴한 개도국들에서 원예농업이나 축산업, 양식업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2천년대 들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으며, 선진국에서나 하던 산업적 농업방식이 이젠 노동과 자연의 착취를 통해 생산비가 저렴한 제3세계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뿐만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의 질 악화도 수반된다. 그런데 이것이 제3세계만의 문제도 아닌데, 페루와 유사한 자연조건을 가진 미국 캘리포니아가 그렇다. 물의 80%를 농업에 쓰면서 오렌지, 아몬드, 포도를 한국 등 전세계로 수출해 온 캘리포니아 역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1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몇 년 동안이나 겪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수출해서 외국 쌀과 고기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산업혁명으로 공업은 농업을 내쫓았고, 녹색혁명으로 공업이 농업과 결합되면서 한번 더 농업을 바꾸었지만, 이제 농업은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의 원리를 다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됨을 알려주고 있다. 최근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4%에 불과하다. 

페루산 포도의 이면

얼마 전 어느 NGO의 대학생 현장 행정견학 프로그램의 비공식 가이드를 맡게 되어 오랜만에 팔당 두물머리를 찾았다. 두물머리 하면 큰 느티나무와 황포돛배가 있는 곳까지만 가서 사진찍고 오는 이들이 많지만, 양수대교 아래로 들어가면 좌우로 각종 비닐하우스와 경작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끝,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진짜 ‘두물’머리 작은 반도에는 자신의 생계와 한국 농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던 농부들과 유기농 딸기밭과 채소밭이 있었다. 2012년 8월 이후 그 모든 것은 일단 사라졌다. 
삼년만에 가 본 두물머리는 슬픈 풍경이었다. 매일 경건한 미사가 집행되고 두물머리의 친구들이 냉이를 캐던 버드나무 십자가 자리는 해남의 땅끝 표지석이나 부산 오륙도 앞의 경계석 같은 비석과 반반한 대리석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긴 이조차도 처음 와보는 이들은 깨끗하니 잘 해 놓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둘러보아도 이 공간은 용도를 알 수 없는 풀밭이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책길과 식재한 초화류는 여름볕 아래서 쑥부쟁이와 개망초, 환삼덩굴로 덮여가고 있었다. 

[사진] 2009년 11월 24일 두물머리 끝에 세워진 십자가. 버드나무 가지에 싹이 터서 여름에는 잎도 무성했다. 이 앞에서 930일 동안 매일 미사가 열렸다. (출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사진] 나무십자가가 있던 자리는 이질적 풍경의 표지석이 차지했다. 유기농 딸기밭은 잡초밭이 되었다. (사진: 김현우)

긴 사연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1973년에 팔당댐이 생기면서 한전은 해발 25미터까지 담수지로 하고 여유분으로 해발 2미터까지 더 매수했다. 밭은 평당 280원, 논은 320원이라는 헐값에 빼앗기다시피 하고 쫓겨난 농민들은 이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20년 장기 임대계약하려는 한전과 싸워서 농사지을 권리를 힘들게 얻어냈다. 그리고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제약을 거꾸로 활용하여 유기농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에 스무 명이 모여 유기농업운동본부를 만들고 이것이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의 모태가 되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기름진 땅을 만들기 위해 십수년이 소요되었고, 벌레먹은 채소를 끼고 여러 궁리를 했고 수도권에 판로를 만들기 위해서도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이렇게 30여년 동안 조안면부터 두물머리까지 넓게 유기농단지가 조성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양평군에서도 수질보호와 지역주민의 삶 개선, 도농공동체 실현이라는 상생의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군 차원에서 유기농업을 장려했다. 덕분에 팔당의 유기농산물은 차차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 의미와 성과는 2011년 제 17차 세계 유기농대회를 한국에서 열게 될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4대강 사업의 예상치 못한 그림자가 이곳에도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팔당지역 유기농 단지를 수용해서 자전거도로와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유기농단지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은 하루 아침에 하천구역 불법점거자,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매도되었고 경찰병력을 앞세워 강제측량이 시도되었다. 이에 맞선 팔당 농민들은 3년 4개월간의 투쟁을 시작했다. 행정대집행 압력과 보상의 미끼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하나 둘씩 눈물을 머금고 떠나갔지만 네 명의 농부들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밭전위원회의 추억

그런데 이 투쟁이 슬프고 외롭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신나고 기상천외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농민들을 위로하고 경찰병력 앞의 저지선에 몸이라도 하나 보태자고 두물머리를 찾은 이들이 ‘두물머리의 친구들’이 되어 스스로 놀기 시작한 것이다. 철거 포크레인과 경찰 방패 앞에서 고무신에 몸빼바지를 입고 춤을 추고, 억수같은 비 속에 음악회를 열고, 그리고 스스로 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며 농사를 짓는 자율적 투쟁이 벌어졌다. 행정대집행의 시도가 거듭될수록 두물머리는 역설적으로 캠핑장과 축제의 현장이 되어 갔다. 그 속에서 유명한 구호, “공사 대신 농사”와 “발전 대신 밭전(田)”이 나왔고, 외부세력이 ‘밭전위원회’를 만들어 두물머리 내부세력이 되어버렸다. 2010년 2월 17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93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를 봉헌한 천주교 신부님 수녀님들은 두물머리를 지키는 공기와 같았다. 

[사진]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의 홍보물

그러나 국토부와 4대강 사업본부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강변에서는 ‘영농’ 또는 ‘경작’이라는 행위뿐 아니라 용어의 사용조차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두물머리의 갈대습지와 유기농 딸기하우스를 거둬내고 만들려는 것은 기껏해야 서울 한강의 어느 둔치에서나 볼법한 자전거길과 꽃잔디밭이었다. 
행정대집행을 거부하는 네 명의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정부는 막대한 벌금으로 화답했고, 남은 이들은 차라리 장렬한 강제철거를 당하며 싸움을 마무리할 결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2년 8월 14일, 천주교 신부님의 중재로 국토부와 두물머리 농민들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두물머리를 가칭 ‘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이행할 협의기구 구성의 약속을 믿고 각종 시설물을 자진 철거한다는 것이었다. 생태학습장을 이름도 생소한 영국 라이톤 공원과 호주 세레스 생태공원을 모델로 한다는 구절을 합의문구에 넣은 것은 공식적으로는 영농 행위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시설을 통해 경작을 우회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였다. 농민들은 이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곳을 물러나왔고, 협의기구 구성에 참여하는 한편으로 두물머리 근처나 또는 좀 먼 곳에 농지를 얻어 농사를 지으며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해왔다.

두물머리 대안 모델의 꿈

그런데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주목할 것이 있으니, 농민들이 스스로 두물머리 상생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려 했다는 점이다. 2009년 초창기 싸움이 첫 고비를 넘기 때쯤 이미 농민들은 대안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고, 퍼머컬처 원리를 적용한 청사진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퍼머컬쳐(Permaculture)는 ‘영속적인(Permanent)’과 ‘농업(Agriculture)’ 합친 말로, 추가적인 자원과 에너지 투입을 최소화한 자연순환적 농업 방식, 나아가서 생활과 문화 양식을 의미하며, 여러 나라의 생태마을과 에너지 전환 마을의 철학과 지침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퍼머컬쳐를 실현한다면 십수년간 유기농 운동을 해온 두물머리만큼 적절한 곳도 없었으리라. 
이곳 농민들은 4대강 사업이 있기 전부터 농민공부모임에서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청사진의 기본 개념을 잡아둔 상태였지만, 두물머리 싸움이 길어지고 언론이 주목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이 더욱 힘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또한 농민들에게 억울하게 덧씌워진 수질오염 혐의도 벗을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농민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보완하고자 국토환경연구소 최동진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곧 ‘두물머리 대안연구단’이 결성되어 2011년부터 4월부터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했다. 
대안연구단은 5개월의 연구 끝에 두물머리 대안농장의 모델을 완성했는데, 비닐하우스는 최소한으로 줄여 육지쪽으로 붙이고 이를 밭과 논이 둘러싸게 하며, 농지 밖으로는 생태완충벨트와 수생정화식물 지대를 배치하여 빗물이나 농업용수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자연정화되록 하는 개념이었다. 인위적인 공간은 최대한 줄이고 에너지는 거의 사용하지 않도록 했으며, 기능적으로는 도시민들을 위한 시민텃밭, 유기농을 통한 치유농장, 귀농자들을 위한 실습 및 교육장 그리고 중앙에 농민들의 농장으로 구성되도록 했다. 
이러한 시민개방형 농장 구상은 4대강 사업 조감도의 천편일률적 하천공원과는 가치로나 고민의 깊이로나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국회에서도 토론되었으며 언론에서도 우호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예상가능하게도,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살했다.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의 획기적 사례가 될 수도 있었을 대안 모델은 그렇게 문서와 자료집으로만 남았다. 농민들이 투쟁의 막바지에 그래도 ‘생태학습장’을 조성한다는 합의를 받아들인 것은, 어쨌든 그 이후에 자신들의 대안이 조금이라도 반영되고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 농민들이 연구해서 만든 두물머리 데안모델

그러나 농민들이 물러나온 후 들리는 소식들은 좋지 않았다. 유기농단지가 철거된 자리에는 34억원을 들여 1차 조경 공사가 끝난 상태인데, 생태학습장 예정부지를 계획도에 그려두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성하고 운영할지를 정하지도 못했고, 양평군은 협의기구가 할 일을 다 했다며 철수해버렸다. 그리고 지난 4월 이미경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다른 쪽에서 한강유역환경청이 ‘에코폴리스 양수리 조성계획안’을 작성하고 있다는 것인데, 결국 조각공원과 문화공원 등 볼거리를 늘리고 둘레길을 만드는 4대강 판박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의 꿈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농업 자체도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행농과 대농 대신 유기농과 소농을 말한다. 두물머리는 그것의 압축적 실험장이었고, 일단 패배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 수는 없다. 페루와 캘리포니아의 땅과 물도 한국의 땅과 물과 어떻게든 이어져있고, 어디서 무슨 노동을 해서 먹고 살든 자원과 환경 위기는 농업의 문제는 점점 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두물머리가 던진 공사 대신 농사, 발전 대신 밭전이라는 화두는 앞으로 점점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 같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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