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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7 13:48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파리 기후변화총회의 박수소리와 그 이면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2,905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발행하는 <함께하는 품> 22호 (2016.1.)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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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기후변화총회의 박수소리와 그 이면


<함께하는 품> 지난 호의 글에서 파리의 21차 유엔 기후변화총회(UNFCCC COP21)를 앞둔 현지의 분위기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전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총회의 결과와 이에 대한 평가를 간단히 나누고자 한다. 주류 언론으로 전해지는 것과는 다른 맥락과 해석의 지점들이 있기도 하다.

지난 해 11월 13일의 파리 테러와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가 시행한 비상 사태 조치 속에서 총회의 안정적인 성사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정작 도착한 파리는 평온한 편이었다. 공항의 검색도 심하지 않았고,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도심을 오가기는 했지만 시민들의 별다른 동요는 느끼기 어려웠다. 다만 테러가 일어난 레스토랑 앞과 추모공간으로 꾸며진 레퓌블릭 광장 같은 곳에서는 겹겹이 놓여진 꽃과 추모의 글들에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파리 테러 때문에 기후변화총회의 회의 내용과 방향이 바뀔 것은 없었다.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파리 총회는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COP15에서 한번 좌절되었던 새로운 국제기후체제를 만들어 내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있었고, 그 성사를 위해 느슨한 온실가스 감축 방식을 초안의 핵심으로 포함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체제가 선진국들을 의무감축국으로 분류하여 강제적 감축 목표를 할당한 것과 달리, 국가별 자발적 감축목표(INDCs)라는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90% 이상의 국가가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 회의 성사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각국이 제출한 감축 목표를 모두 합하면 금세기 말까지 평균 기온이 2.7도에서 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어 기후 취약국과 취약 집단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자발적 목표인만큼 이 정도라도 각국에서 지켜질지 미지수이기는 하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는 세부 문구 조정을 놓고 2주간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전개되었다. 이번 회의의 진행을 보면, 사전부터 회의의 프레임을 주도한 것은 미국 정부였고 중국이 자국의 환경오염 등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이에 동의하며, 개최국인 프랑스가 개도국의 반발과 요구들을 타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용하는 역할분담의 시나리오로 진행되었다. 특히 미국은 기후변화 회의론이 팽배한 공화당도 의회 비준에 동의해 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고 그에 따라 세부 문구의 수위 조절을 요구했다. 회의 결과의 명칭도 약정(protocol), 협정(accord) 같은 강한 표현 대신 더 낮은 용어를 쓰기를 바랬으며, 심지어 그냥 결과(outcome)로 하자는 이야기가지 나왔다. 결국 용어는 파리 합의(Paris Agreement)로 정해졌고, 합의되지 않은 많은 쟁점들은 다음 회의로 미루고 어떻든 ‘합의서’를 만드는 것이 주된 목표인 회의가 되었다.

 

큰 박수소리, 그러나 발톱은 빠진 합의문

총회의 예정 시간을 하루 넘겨 12월 12일 발표된 파리 합의는 교토의정서 체제(2008-2012년) 이후의 공백 상태를 해결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공식 회의장 내의 큰 자축 박수와 이에 대비되는 회의장 바깥 기후정의운동 진영의 비판 시위는 ‘파리 이후’의 해석과 후속 논의가 더 많은 어려움을 노정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실제 합의된 문구를 살펴보자. 우선 파리 합의문의 전문(preamble)에는 식량 안보, 정의로운 전환, 괜찮은 일자리, 인권, 취약한 상황에 놓인 원주민·공동체·이주민·아동의 권리, 발전권, 젠더 평등, 세대 간 형평성, 어머니 지구, 기후정의 등, 과거 기후변화 총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파리 총회가 굉장히 진보적인 내용의 결정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고, 또 이 전문의 문구들은 앞으로 파리 합의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보다 전향적인 각국의 기후 정책과 국제적 지원을 요구할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추상적인 표현들은 정작 합의문 본문이 결여하는 구체적인 이행 방식과 구속성 문제를 피하기 위한 미사여구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합의된 본문에서는 초안에 존재했던 연도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가 사라졌고, ‘탈탄소(decarbonization)’라는 초안의 표현이 금세기 말까지 ‘순배출량 제로(net zero)’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문구 변화는 상쇄(offset) 기술, 즉 온실가스 배출이 늘더라도 그것을 포집하거나 희석하는 기술 또는 탄소시장의 역할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화석 연료 사용의 종말 선언처럼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평균 온도 상승을 2도보다 훨씬 낮게(well below 2˚C) 유지하고 1.5도로 억제하도록 노력한다는 온도 목표 설정은 기후취약국들의 요구를 반영한 성과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INDCs 방식 하에서 선언적 의미를 넘기 어렵다. 그 실현가능성과 구체적인 실현 방법은 2023년부터 5년마다 공동으로 이행 실적을 검증하고 각국의 목표를 재설정한다는 약속 이상이 제시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영국의 기후변화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는 <가디언>의 기고문을 통해 이번 합의가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기적이지만, 해야 할 것에 비해서는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총회 폐막식에서 환호하는 주요 인사들과 에펠탑 앞에서의 항의 시위

 게다가 합의문은 긴 협상 과정과 문구 조정 끝에 초안에 포함된 정도의 구속력도 잃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손실과 피해(8조)에 대해 선진국들이 법적 책임과 보상 개념을 거부하면서 추후 논의하는 것으로 했고, 재정(9조) 역시 조달 방법에 대한 명시적 언급없이 선진국이 부담하고 개발도상국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다만 2025년까지 연간 1천억 달러를 조성하는 지금의 목표를 유지하고 이후 그 이상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기로 했다. 기술개발 이전(10조)와 실행준수(15조)에서도 지적재산권 장벽 해결 이슈, 기후정의 국제재판소 설립 등 골치 아플만한 것들이 삭제되었다.

이러한 문구 ‘맛사지’ 보다 더 큰 문제는 파리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55개국 이상의 비준과 함께 비준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이 되면 발효되는 국제법적 성격을 갖지만, 합의를 위배할 경우 국제적 평판 하락이나 도덕적 지탄 외에는 공식적 처벌이나 제재가 없는 상징적인 성격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총회 마지막날 프랑스 외무장관 로앙 파비우스는 발언을 통해 이 합의가 국제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막연하게 선언했지만, 그것을 보장할 문구는 아무 것도 담기지 않았다.


자본에 포획된 기후레짐과 자발적 대안들

이러한 전후 과정과 결과가 거대 화석연료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음은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다. 파리 총회는 대기업들의 직접적 참여와 회의 프레임짜기에서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이번 파리 총회 공식 후원사에는 에어프랑스, 핵발전과 석탄화력 발전 사업을 하는 EDF(프랑스 전력공사), 화석연료 금융사업을 하는 BNP 파리바스 등이 대거 속해 있었고, 이에 따라 기후협상이 투자기회를 잡는 무역박람회와 같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행 각론과 방법론이 결여된 파리 합의는 이후 책임과 보상의 문제에서 기후재정 이슈를 더욱 부각시킬 것인데, 앞으로 조성될 기후기금도 실질적 화석연료 사용 감소와 기후정의 실현보다는 기업들의 사업기회 측면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회의장 바깥에서 만났던 영국 <코너하우스>의 연구자 래리 로먼은 이제는 기후재정의 규모 못지않게 “무엇을 위한 기후재정인가(finance for what?)”를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리 합의에 대한 한국 언론 다수의 반응도 합의 타결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책임을 요청하거나, 감축 부담을 한국 기업의 새로운 활로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송도의 GCF(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의 활용을 기대하는 피상적인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제출한 BAU(현 추세 지속) 대비 37% 감축 목표는 경제단체들의 엄살과는 달리 실제로 큰 부담이 아닌 데에다, 한국 기업들의 사업 전략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파리 합의가 정부의 핵발전 확대 드라이브의 빌미가 될 것이 우려된다.

요컨대 파리 합의는 유엔 기후체제를 살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중요한 결정들에는 5년의 유예를 둔 것에 불과한 탓에, 파리 이후 많은 후속 논의가 요구될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방식의 기후레짐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유엔 체제와 각국 정부의 협상에 의존하지 않는 자발적인 에너지 전환과 자립, 연대의 움직임들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는 것에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동조합에게는 더 많은 숙제가

총회가 한참 진행 중인 일정 가운데 회의장 안에서 ITUC(국제노총)의 환경과 노동안전 정책 담당자인 아나벨라 로젬버그를 만났다. 그녀는 노동조합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강구하고 국제적으로 조율하는 열성 활동가이기도 하고, 한국에도 몇 해 전 방문하여 우리와도 아는 사이다. 그녀에게 ‘정의로운 전환’ 문구가 협상에서 어떻게 반영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었다. 역시나 그녀의 대답은 지금은 초안에 살아있지만 결국은 선언적인 의미로 전문 정도에 배치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처음 겪는 일도 아니라는 반응이다. 결과는 아나벨라의 예상대로 되었다.

[사진] 아나벨라 로젬버그와의 만남

ITUC는 파리 합의문이 나온 직후, 결과에 대한 평가와 입장을 재빨리 발표했다. ITUC가 보기에 파리 총회의 성적표는 당장의 국가 이해 보호를 지속가능한 지구와 인류 공동의 미래 보다 우선시 하는 국가들에 의한 타협의 결과다. ITUC는 파리 총회에 앞서 제시한 세 개의 우선 요구와 관련하여 회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요구사항

합의내용 평가

결과 및 의미

①감축 목표의 상향과 기후 대응의 일자리 잠재력 현실화

정부들은 2도 상승 훨씬 아래의 경로, 그리고 1.5도 이하를 이상적인 것으로 노력하기로 했으나, 그 실현은 2020년 이전에 보다 의욕적인 목표와 함께 2020년에 합의가 이행되기 이전에 (전체 목표뿐 아니라) 각국의 목표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다.

(본문에서) 사라짐

②기후 재정 조달과 가장 취약한 집단의 지원

적응과 배출 감축의 균형을 도모하기 함께 매해 1천억 달러 지원이 파리 합의의 의제로 올랐다. 이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비용일 뿐이다.

약함

③노동자와 지역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보장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산업 변화를 직면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과 인권에 대한 존중이 전문에 포함되었지만 대다수의 정부들은 그 본문(operational section)에 포함시키기를 거부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첫 걸음

ITUC의 의장 새런 버로우는 “기후변화를 안정화하기 위한 경주가 시작되었지만, 대다수의 정부들이 여전히 인민의 생존을 위한 열의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극을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들은 파리가 길의 끝이 아니라 파리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풀어가야 함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COP21로부터 시작하여, 노동조합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탈탄소, 청정에너지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할 노력을 포함하는 일자리 계획을 위한 국가 계획의 대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다짐이다. 노동조합에게 더 많은 숙제를 남긴 파리 총회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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