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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7 14:02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베스타스 점거 투쟁, 그 뒷 이야기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702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발행하는 <함께하는 품> 23호 (2016.3.)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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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스 점거 투쟁, 그 뒷 이야기


베스타스는 덴마크에 본사를 둔 세계 1위의 풍력발전기 제작업체다. 2009년에 영국 남부 와이트 섬에 소재한 베스타스 풍력터빈 공장에서 본사의 사업 정리에 저항하는 18일간의 점거 농성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함께하는 품> 10호(2014년 1월호)에서 ‘루카스 플랜’을 소개하면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투쟁과 이후의 이야기를 좀 더 살펴 본다.

애초 베스타스는 풍력터빈의 영국 내수와 수출 증가를 전망하여 영국까지 진출했던 것이었고, 때는 바야흐로 코펜하겐의 유엔기후변화총회를 앞둔 해이기도 해서 영국 정부도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에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와이트 섬 공장은 영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도되는 전문 풍력터빈 생산기지였기 때문에 정부와 노동자들의 기대도 컸고, 작은 섬의 지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했다. 그런데 영국 자국 내의 풍력 설비 확충이 기술적인 이유와 입지 갈등 등으로 예상보다 늦어지고 판로가 불투명해지자 베스타스는 6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던 와이트 섬의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연히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전반적으로는 수익성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베스타스의 사정을 고려하면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나 와이트 공장의 노조 조직은 매우 미약했고, 사측도 노조 활동을 억압했으며, 산별노조(영국에서 가장 큰 노조에 해당하는 Unite!)의 활동도 조직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공장점거가 시작된 것은 2009년 7월 20일이었다. 임박한 청산과 정리해고 소식을 듣고 조합원들과 외부 사회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 점거를 포함한 대응 방식 논의가 있었지만, 사실 이 날은 그냥 유인물 선전전만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20명의 노동자들이 이때가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공장으로 밀고 들어갔던 것이다. 곧바로 사측은 출입을 통제하고 음식물 반입도 막았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연대자’와 외부 세력들이 공장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캠핑차량을 끌고 와서 투쟁위원회 사무실이 되었고 또 ‘가족과 지역사회 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 농성자들은 “녹색일자리를 지기키 위해 굶게 되다!”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와이트 공장 조합원들이 속해있던 Unite! 노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 활동에 나선 RMT(궤도항만운수노조)의 밥 크로우 위원장은 헬리콥터라도 띄워서라도 공장 안으로 보급품을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몸싸움 시도 끝에 음식물 반입에 성공했고 그때부터 사측도 음식물을 제공했지만, 피자 조각 아래에 해고통지서를 깔아서 전달하며 농성자들을 자극했다.

 

18일의 점거가 만든 적록동맹

‘녹색일자리’ 구호에서 볼 수 있듯, 베스타스 점거 투쟁은 일자리와 환경을 모두 지키자는 구호를 통해 한 작업장의 방어 성격을 벗어나서 사회적이고 전국적인 투쟁으로 급부상했다. 구호는 “일자리를 지키고, 지구를 지키고, 베스타스 공장을 지키자”는 것으로 구체화되었고, 영국 정부로 하여금 와이트 섬 공장을 국유화하여 풍력터빈 생산을 계속 발전시키자는 요구로 제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들뿐 아니라 환경운동가들도 공장 앞집회와 영국 여러 곳의 캠페인을 통해 연대에 나서기 시작했고 와이트 섬 지역의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 캐롤라인 루카스 같은 이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7월 23일자 <가디언>은 “베스타스 투쟁이 풍력 공장 폐쇄에 맞서 싸우는 적색과 녹색의 동맹을 형성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그림> 베스타스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유인물


점거 투쟁이 이렇게 사회적인, 특히 기후변화와 녹색 경제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국제적 기후 논의와 5년 내에 40만개의 녹색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영국 정부 정책 그리고 베스타스 본사의 행태 사이의 이율배반이 배경이 되었지만, 와이트 공장 노동자들의 인식과도 무관치 않았다. 이곳 노동자들은 튼튼하고 가벼운 요트 제작의 노하우를 가진 이들이 많았고, 이 기술을 풍력터빈 블레이드와 부품 제작에 적용했다. 런던에서 이곳으로 일하러 온 한 노동자는 환경친화적 일자리에 관심을 갖고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자부심과 잠재 의식은 처음에는 개인적이고 파편적인 것이었으나 점거가 진행되면서 더 큰 그림이 노동자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공장폐쇄 저지 투쟁은 녹색일자리를 통해 지역 경제를 지키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며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그 몇 달 먼저 진행된 비스테온(Visteon) 자동차부품공장의 작업장 점거 사례 등이 와이트 공장 노동자들에게 직접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비스테온 노동자들은 “플라스틱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의 기술은 자전거, 트레일러, 태양광 패널, 터빈, 재활용 수거통 등 더욱 많이 필요해지는 녹색 생산품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장 안팎에서의 투쟁과 함께, 전국적인 캠페인과 호소 활동이 이어졌다. 환경활동가들이 조직한 ‘기후캠프’와 RMT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농성천막이 설치되는가 하면, 영국의 유명한 저항 포크싱어 빌리 브랙은 와이트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 에너지 및 기후변화부 장관이자 노동당의 촉망받는 정치인 에드 밀리반드가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이 이어졌고, 기후변화 운동가들은 피터 만델슨 기업부장관의 집으로 항의 방문에 나섰으며, 또 몇몇 농성자들은 사우스햄튼의 크레인에 올랐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는 녹색일자리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베스타스 해결에 나설 생각이 없었고, 일선의 지역 노동조합과 산별 조직들의 연대 활동에 나섰지만 영국노총 차원에서는 노동당과의 파트너십이 우선이었다. 1977년 루카스 플랜이 좌절된 상황이 재연된 꼴이었다.

<사진> 런던의 에너지 및 기후변화부 사무실 앞에서 열린 베스타스 점거 지지 시위. 밥 딜런의 노래 가사로 현수막을 만들었다.

 

마침내 사측은 법원으로부터 농성자들의 공장 퇴거 명령을 받아내었고, 농성 18일만인 8월 7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여섯 명의 농성자들이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으며 공장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베스타스 점거 투쟁은 막을 내렸다. 베스타스의 국유화와 생산 지속을 위한 요구가 계속되었고, 마지막 남은 블레이드를 실어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투쟁도 벌어졌지만 결국 공장은 폐쇄되고 425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말았다. 섬에서의 저항은 끝났음에도 베스타스 공장 폐쇄는 그해 말 코펜하겐의 기후변화총회 내내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준비되지 않았던 점거 속에서 사람들은 폭발적인 경험과 인식을 나누었다. 생산 계획에 대한 노동자들의 개입 필요성과 노동 이슈와 환경 이슈 그리고 조직 사이의 연결 고리에 대한 발견, 적록 동맹의 현실적 모양에 대한 느낌 등이 결과로 남았다면, 개별 자본의 선의와 정부 재량에 의탁하는 것의 한계도 절감되었다. 노동과 환경의 몇 주 간의 연대가 과연 얼마나 튼튼하고 지속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보다 큰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하는 것도 고민거리로 남았다.


다시 열리는 와이트 섬 생산공장, 그러나

그로부터 대략 1년 후인 2010년 7월에 반가운 뉴스가 전해졌으니, 점거에 마지막까지 참여했던 조합원 중 한 사람이었던 숀 맥도나우(Sean McDonagh)가 폐쇄된 와이트 공장 바로 근처에서 소형 풍력터빈 공장을 열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슈어블레이드(Sureblades)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지역 경영인의 회사와 RMT의 지원 속에 해고 노동자들의 활로를 찾고자 준비되었고, 이미 아일랜드로부터 상당량의 주문도 확보해 놓았다고 전해졌다. 숀은 비록 힘든 일이 많겠지만 앞으로 40명 이상의 베스타스 해고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생산 예정인 터빈은 4.6미터 정도 구조에 15kW급 소형 터빈으로, 이전에 만들던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사우스햄튼 대학의 기술 자문도 받았고 블레이드 소재도 사용 후에도 100%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해서 틈새 시장을 노리고자 했다. 그러나 작지만 의미심장했을 이 노동조합 주도의 대안 생산 실험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찾아본 기업 정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생산물을 내지 못하고 2010년에 청산된 것 같다. 아마도 중대형 풍력터빈이 각광받는 시장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수 있고, 자금력 부족이나 정부 지원 부재도 예상가능한 곤란을 초래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2015년 봄, MHI 베스타스(미쓰비시중공업과 합작회사)가 와이트 섬에서 풍력터빈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동안 커진 해상 풍력터빈 시장에 힘입어 80미터나 되는 블레이드를 갖는 대형 풍력터빈 생산 기지를 와이트 섬에 조성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베스타스는 와이트 섬의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도 이곳에 연구개발 기능은 남겨두고 있었는데, 새로 개발된 V164-8.0MW라 불리는 모델이 영국 리버풀 베이에 설치되는 것을 시작으로 베스타스의 야심찬 시장 개척 프로젝트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회사는 800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 홍보했다.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먹튀’를 감행했던 베스타스가 이렇게 돌아온다고 하니, 지역경제가 살아날지는 몰라도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새 프로젝트 관련 기사와 보도자료에 그 때 해고되었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 그리고 점거에 참여했던 농성 조합원들의 소식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아마 개별적으로 합류하게 된 노동자들이 있더라도 베스타스 사측에서는 2009년 점거 투쟁의 흔적을 다시 불러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8일간의 점거 투쟁이 만들었던 불꽃, 연대, 상상력을 누군가 다시 불러내어야 할 때가 아닐까? 정의로운 전환과 녹색일자리의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다시 확인한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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