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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09 15:18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와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은?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4,288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발행하는 <함께하는 품> 25호 (2016.7.)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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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품> 25호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와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7월 4일자 <매일노동뉴스>의 한 기사는 IT(정보통신기술) 종사 노동자의 산재 인정 판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06년에 농협정보시스템에 입사한 뒤 2년 4개월간 일하는 동안, 기한 내에 프로젝트를 완수하느라 평일에는 밤 11시에서 12시까지, 토요일에는 저녁 6시에서 밤 10시까지 일하고 종종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 끝에 면역력 저하로 폐렴과 결핵에 걸려 폐 일부를 잘라 내는 수술을 받은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의 사례였다.

하지만 이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회사측은 초과근로는 월 1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 회사의 공식적인 정책이라며 초과근로시간을 월 10시간 정도만 입력하도록 사내 전산시스템을 설정했고, 때문에 살인적인 야근을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는 2012년이 돼서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공단은 감염병은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두 차례에 걸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법원은 다른 판단을 했는데,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결핵균이 활성화돼 상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1, 2심 재판부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사는 만성적 과로에 시달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대한 업무상질병을 인정한 보기 드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가 아닌 일반 사무직 노동자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스마트기기 활용으로 인해 공식 업무시간 외 노동에 시달리는 문제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 7월 1일자 기사는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수행한 “스마트기기 업무활용 현황 실태조사” 결과를 소개했는데, 응답한 노동자의 10명 중 7명꼴로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업무시간 외 업무를 위해 일주일 평균 11시간 이상을 투여했고, 업종별로는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종’ 노동자의 스마트 초과근로 경험 비율이 89%로 가장 높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국회에는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신경민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제출되기도 했다. 근기법 제6조 2항을 신설해 “사용자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휴대전화를 포함한다),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리는 등 근로자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자는 것인데, 국회 처리 전망은 밝지 않다고 한다. 사용자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또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업무시간 외 업무 금지가 현실에서 가능한가 하는 논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통신기술 낙관론의 근거

돌이켜 보면,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90년대에 인터넷 이용이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에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희망적인 기대를 걸었다. 민주주의의 촉진과 경제의 무한한 성장 같은 기대가 대표적이었지만, 정보통신기술이 자원 소모와 노동시간을 줄이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줄을 이었다. 종이 문서가 없는 사무실, 교통체증을 겪으며 출근할 필요가 없는 재택근무와 온라인 업무 처리, 화상 회의, 창고의 필요를 줄여주는 실시간 재고 파악과 적기 공급 시스템, 전력을 적게 소비하는 효율적인 사무기기 등이 사례로 언급되었다. ‘무어의 법칙’과 ‘메트칼프의 법칙’은 이러한 장밋빛 전망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회자되었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주장한 것으로,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4개월마다 대략 2배씩 증가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텔은 이에 따라 칩 개발 로드맵을 만들어서 컴퓨터를 개발했고, 저렴한 개인용 컴퓨터의 폭발적 보급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1989년에 출시된 인텔 486은 120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가졌는데 2012년의 인텔 3세대 코어 i5 프로세서에서는 그 숫자가 10억 개로 늘어날 정도로 발전하여 무어의 법칙은 경험적으로도 들어맞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컴퓨터 CPU의 초당 계산 속도는 2010년경부터 24개월에 두 배까지 빨라지지는 못하게 되었는데, 회로가 너무 미세해진 나머지 발열과 병목현상 같은 장애 요인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회로 설계를 입체화하거나 기능을 복합화하여 실제 성능은 두 배를 향상시키고 있다는 주장들도 제기된다.

메트칼프의 법칙은 컴퓨터 네트워크의 규격 중 하나인 이더넷을 발명한 로버트 메트칼프가 1995년에 제시한 “통신 네트워크의 가치는 참여자의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논리다. 즉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 비용의 증가 규모는 점차 줄어들지만 네트워크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인터넷과 지금은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IT 기기의 보급으로 현실화되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열풍과 유투브 같은 공유서비스의 인기는 메트칼프의 예견이 의미심장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림> 무어의 법칙과 메트칼프의 법칙


정보통신기술의 잠재력을 설파한 두 법칙은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이 가져올 것으로 제시된 희망적 전망들은 얼마나 실현되었을까? 특히나 일터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얼마나 기여했을까? 예를 들어 2010년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보고한 “스마트워크 활성화 전략”은 여전히 낙관적인 전망이 가득하다.
원격근무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감소하고, 재택근무로 산후휴가 복귀율이 증가함으로써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며, 유연근무로 사무실 공간을 절감하여 기업 경비를 줄이고, 빠른 시간에 결재와 메일을 처리하여 업무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주변을 둘러 보아도 사무실의 서류가 그다지 줄어들지도 않았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여전히 야간 노동에 시달리고, 스마트기기의 앱 사용이 도리어 업무외 노동을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워크가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의 조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는 24시간, 일주일 내내 잠재적 노동 상태를 초래하고 있는 형편이다.

IT 산업은 에너지 먹는 하마

게다가 정보통신기술 산업은 예상과는 달리 절대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인터넷망으로 오고 가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의 서버와 함께, 여기에 필요한 전력망, 냉각시설도 함께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TV 광고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권하지만, 우리가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 방식으로 이용하는 컨텐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의 페이지 로딩이 모두 더 많은 자원 소비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개별 소비자 즉 이용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며, 개인들이 인터넷 사용을 자제한다고 해결될 일도 절대 아니기는 하다.

어쨌든 지난 해에 그린피스가 한국 IT 기업 재생에너지 이용 성적표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인터넷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의 전세계 전력 소비량은 2011년 기준으로 6840억kWh에 달해서, 국가별 전력 사용량 5위인 러시아의 전력 소비량(7290억kWh)에 근접할 정도였다. 국내 데이터센터도 지난 2013년 국내 1200만 가구의 한 달 전력량과 맞먹는 약 26억kWh를 사용했다.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NHN은 춘천 교외에 ‘각’이라는 이름의 독자적 데이터센터를 만들었고 여기에 다량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추고 에너지 효율화 기법을 설계에 도입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는 데이터센터 자체가 매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글과 애플의 경우 다른 IT 기업에 비해 선구적으로 에너지 소비 감축과 재생에너지 활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구글과 애플의 서비스 덕분에 전 세계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량과 에너지 소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설이다.

<사진> 구글의 데이터센터. 대규모 공장이나 다름없는 구조다.

게다가 IT 분야는 환경오염 물질도 예상보다 많이 배출한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리처드 호킨스 교수가 2009년 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총회에 맞추어 제공한 연구 자료를 보면, 정보통신기술이 물질적 차원이 거의 없거나 또는 전혀 없다는 가정 하에 최소의 환경 영향을 초래하는 친환경 기술로 간주되고 있으나, 실상은 훨씬 더 복잡하다.

우선 호킨스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제조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마지막 단계에는 독성이 높은 엄청난 규모의 전자기기 폐기물을 만들어 낸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데이터센터에서 보듯이 디지털 기술은 운영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전 세계 항공기 운항 시스템과 맞먹는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선의를 가진 다수의 IT 제품 제조업자가 청정한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환경 영향이 발생한다. 이러한 반동 효과는 IT 제품에 의해 직접 생기지 않더라도 증폭될 수 있는데, 이미 환경 영향을 초래하고 있는 다른 활동을 IT 제품이 증가시키거나 기여할 때 발생한다. 스마트폰 기술이 인간의 과도한 이동과 활동을 부추기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지난 몇 년 사이 우리가 전철 안에서, 교실과 사무실에서 모두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과거보다 훨씬 많아진 그러한 활동이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의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다른 한편, 재생에너지 기술을 장착하고 에너지 비용을 돌려주는 패키지를 포함하는 상품들은 더욱 더 기업들의 ‘그린워시(녹색분칠)’로 활용되게 되었다.

인간을 위한 기술, 노동자의 기획은?

지난 20여년 간 컴퓨터는 무어의 예측만큼 빨라졌고 네트워크의 크기와 조밀도는 메트칼프의 계산만큼 커졌다. 하지만 빨라진 컴퓨터로 실제 일반 사무실에서 활용하는 프로그램의 종류는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은 큰 차이가 없다. 웹서핑을 위한 브라우저,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문서작성을 위한 워드프로세서, 사진 보정과 출판을 위한 포토샵과 편집 프로그램 등이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은 CPU의 집적도가 향상되는 주기에 따라, 그리하여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가 출시되거나 버전업됨에 따라 함께 버전의 숫자를 높여왔고, 기능의 개수와 편의성도 함께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의 본질과 생산물의 효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심야노동과 과로로 인한 산재,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의 증가는 계속되었다.

결국 정보통신기술의 긍정적 기능, 보다 인간적인 노동과 여유 있는 삶을 위한 잠재력은 기술의 발전 자체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어떤 기술과 제도든 그것이 노동자의 삶과 환경 보호를 위한 것이 되려면 기술과 제도의 성격을 문제 삼고 이를 바꾸려는 적극적인 기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정보통신기술 종사 노동자들, 과학기술 노동자들, 환경운동가들 모두가 각자의 노동을 하느라, 그리고 카톡과 페북에 뭔가를 올리느라 너무 바쁜 것이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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