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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12 12:53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에너지산업 구조개편, 공공성 담론과 시장화 담론 사이에서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4,141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발행하는 <함께하는 품> 27호(2016. 12.) 원고입니다



에너지산업 구조개편, 공공성 담론과 시장화 담론 사이에서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는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의 큰 방향도 포함되어 있어 관심을 끌었다. 2014년부터 추진된 신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정책까지 함께 보면 정부가 시장과 경쟁 수단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노동운동 또는 시민사회의 대응은 ‘민영화’와 ‘분할’에 대한 반대 또는 찬성이라는 오래 된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러한 상황을 진단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지난 10월 27일에 “에너지산업 구조개편 쟁점과 에너지 민주주의의 대안들”이라는 제목으로 창립 7주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필자를 포함하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자들의 발표의 문제의식을 요약하여 전함으로써 에너지 민주주의의 담론을 좀 더 심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공기관 정상화와 에너지 신산업 정책

한국 정부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주요 기간산업 및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를 급속도로 추진하고자 했다. 전력산업의 경우 1999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이 본격 시행되어, 2000년대 중반부터 발전 분할과 경쟁체제 도입, 도매전력시장 운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발전노조의 파업과 이후 노사정위원회의 개입으로 배전부문의 분할은 중단되고 현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경쟁 체제가 도입된 발전 부문에서는 LNG 복합발전을 중심으로 한 민간발전사업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서도 발전사업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가스 산업의 경우 1999년 가스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통해 시도된 민영화가 노조들의 저항으로 중단되었지만, 정부는 기업의 가스 해외 직도입과 경쟁체제를 타진하고 있다. 
또한 작년부터 정부는 ‘에너지신산업’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를 위한 에너지 프로슈머나 중계사업 개방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에너지산업의 새로운 민영화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의 내용인 ▲유사 중복기능 조정, ▲부실 정리 및 비핵심업무 축소, ▲민간개방 확대 및 민간경합 축소, ▲경영 효율화, ▲미래 대비 기능 강화를 통해 추구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역시 우회적 민영화라는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민영화가 공공성을 훼손하고 요금 인상 등으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볼 일이었다면, 에너지 산업의 구성이 복잡해지고 ‘탈핵’과 에너지 전환의 관점까지 더해지면서 논의 구도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 관련 시장과 기술에 대한 판단의 차이를 비롯하여 미래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구상의 차이, 그리고 실천 전략의 차이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방안에 대한 대안 담론으로서 ‘에너지 공공성론’, ‘시장활용 에너지 전환론’, 그리고 ‘지역화/공유화론’이라는 세 개의 입장이 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명칭들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자들이 붙여 본 것으로, 아직 사회적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다. 

에너지의 공적 소유가 공공성을 담보할까?

1999년부터 벌어진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그리고 2002년 발전, 가스, 철도 3개 노조가 벌인 공동파업을 통해 공공성은 ‘공익’이라는 보수적 개념을 탈피하여,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의 권리, 소유, 통제를 의미하는 진보적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노동과 환경 진영의 연대를 표방하며 2005년에 출범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를 필두로 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담론이 에너지 공공성론의 내용을 이루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표방한 핵심 테제는 다음과 같았다. ①에너지 산업의 공공성,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대전제, ②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전략적, 단계적 이행계획을 고민, ③분할과 경쟁으로 왜곡된 전력산업, 가스 산업 체계를 공공성 확보를 위한 바람직한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정책을 제안, ④에너지 체제 전환에 따른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모색하고 관련 기구의 독립성과 민주성 확보방안을 마련, ⑤에너지 공공성,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노동과 환경의 범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안. 
이러한 주장과 활동은 노동과 환경의 연대를 시도하고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노동조합의 사회공공성 투쟁 차원에서 유용한 논리를 제기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에너지 공공성 담론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는데, 우선 사유화 반대가 현상 유지를 위한 투쟁으로 머무르는 경향을 보였다. 국가, 독점 공기업, 노동조합 중심의 사고와 성장주의 및 경제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다양한 대안적 모델에 대한 거부감도 엿보였다. 또한 에너지 공공성 관점에서 에너지 전환을 수용하고자 했으나, 현실에서는 부차적 이슈로 취급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등에 이슈에 대한 대응도 소극적이었다. 최근 북미 중심의 TUED(에너지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의 논의 동향을 소개하고 국제적 움직임에 동참하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한국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들의 사업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정책 단위의 고민에 그치고 있는 듯하다. 

[사진] 2015년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의 TUED 행사. 나오미 클라인과 제레미 코빈 등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이 계속되고 노동조합의 자기 방어적 태도가 더 두드러지게 보이게 되자, 노동자들이 공적 소유권이라는 명분을 방패로 고용 안정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시민사회의 관심도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민영화를 저지하고 소유권과 지배 구조를 공공 영역에 남기는 것만으로 에너지의 사회적 공공성이 실현될 것인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조성된 탈핵 여론과 에너지 요금 논란 같은 계기에 대해서도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들은 이렇다 할 입장이나 활동을 보인 것이 거의 없다. ‘민영화되면 에너지 요금이 오른다’는 논리만으로는 너무 앙상해 보이는 것이다. 

시장을 통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까?

한편 환경운동 진영 일각에서는 민영화가 탈핵과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전력의 독점 체제를 깨지 않으면 안 되며, 그 방법 중 하나가 민영화 또는 분할이라는 주장으로 제기되어 온 바다. 그리고 실제로 한전 독점체제를 두고 노동조합 운동과 환경 운동은 당시에 매우 심각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핵발전이 사실상 국가의 엄청난 지원과 보조금으로 지탱된다는 근거에서 핵발전을 민간 회사로 넘기는 것이 핵발전의 경제성 신화를 벗기고 개별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핵발전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볼 수 있다. 
물론 민영화 또는 시장화에 대한 기대가 지구화된 금융자본의 힘을 간과한 것이라거나, 민영화하더라도 알짜 공기업만 재벌에게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즉 시장화 자체가 경쟁을 통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거나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안일한 기대라는 것이다. 
어쨌든 발전노조 파업을 경과하면서 에너지 공공성 진영과 에너지 전환 진영의 접점을 찾는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동과 환경의 연대는 질적으로도 또 양적으로도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된 에너지 기술의 발전,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의 확대, 에너지 협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참여의 확산, 지역에너지 분권 주장 등을 배경으로 보다 유연한 에너지 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장화라는 대안이 다시 설득력을 높여가고 있는 분위기다. 요컨대 시민이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자와 판매자라는 현실 주체로서 진입하지 않으면 에너지 민주주의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도 부분적 시장화와 개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의 누진제 요금폭탄 파동은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 또는 자율적 시장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서도 어떤 규모와 방식의 시장이고, 그 시장을 통하여 민주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단은 있는지 하는 이야기는 아직 부족하다. 시장은 하나가 아니며 운영과 관리의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렇다면 에너지 시장 자체에 대안적 시장 개념을 적용해 볼 수는 없을까? 이는 ‘지역’이라는 범위와 수준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화/공유화론이 제기되는 배경 중 하나다. 

지역화/공유화론이 돌파구가 될까?

지역 에너지 체제에 관심을 둔 국내의 에너지 전환론자들 중 일부는 최근 해외 재지역화/재공유화에 대한 흐름에 공감하며 다양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재’지역화(re-municipalization)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특히 유럽의 경우에 원래 지방자치체가 운영하던 전기, 가스, 수도 등의 서비스가 민영화 되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지역화 되고 공적 소유와 운영 체제로 복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지방 정부와 지역 수준의 에너지 서비스가 제공된 과정이 없이 처음부터 중앙정부 주도로 시스템이 갖추어져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냥 지역화 또는 공유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어쨌든 독일의 사례를 보면, 1990년대의 에너지 산업 자유화 조치 이후 각 지자체가 가지고 있던 전력산업의 운영권을 주로 거대 민간기업에게 이전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운영권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을 맞아서 지자체가 다시 그 운영권을 되찾고 시영회사(Stadtwerk)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2007-12년 사이에 60개 이상의 시영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0개 이상의 에너지 배전(과 가스공급)망의 운영권이 공적 기관으로 되돌아왔다. 영국에서도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이 에너지 등 공공 서비스의 재공영화 정책을 발표했으며, 그 이전인 2013년에 이미 공공 서비스의 소유와 운영권 복귀를 요구하는 “We own it”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사진] 독일 함부르크에서 벌어진 에너지망 재지역화를 위한 주민투표 운동

한국의 중앙정부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노력에서 답보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서울, 경기, 충남, 제주가 함께 지역 에너지 전환 계획을 세우고 협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이미 이러한 지역화와 공유화 조짐의 일부일 수 있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과 제주도와 서울시의 에너지 공사 설립 움직임,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협동조합의 증가 같은 현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전력산업 구조가 에너지 전환에 보다 조응하며, 전력이용자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면서 공정한 비용으로 제공되고, 동시에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개편하는 방안을 유럽의 경우를 참조하여 구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송전 부문 및 지역 간 전력 거래는 국가적 수준에서 공적으로 소유 운영 및 관리하되, 배전과 판매(소매) 부문은 지역적(광역 혹은 권역별)로 분할하되 광역 지자체에 의해서 공적으로 소유 운영 및 관리하도록 한다. 한전의 지역본부를 개별적 혹은 인근 지역과 연합하여 분할하고, 이를 광역지자체(혹은 그들의 연합)가 인수하여 지역에너지공사 등으로 개편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러한 지역에너지공사는 독일의 사례처럼 운영진을 시정부, 노동자, 그리고 시민대표로 구성하고, 시민총회 등의 제도를 통해서 민주적으로 통제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판매(소매) 부문은 지역 에너지공사가 중심적 역할을 하지만 ‘그린 프라이싱(재생가능에너지 발전시설의 생산 전기에 대하여 차별적 요금 책정)’ 제도 등의 운영을 위해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한편 발전 부문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국가 수준에서 공적으로 소유 및 운영되는 한전 자회사, 지역에너지공사, 지역별로 활동하는 에너지협동조합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며, 대규모 민간발전사업자의 추가적인 설립허가는 엄격히 제한한다. 이는 핵발전소와 석탄화력 발전소 신규 건설 중단 그리고 노후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페쇄와 병행된다. 물론 여기에서 고용 승계 또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이슈를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 부문에서는 한국에너지공단의 각 지역본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리감독의 부문에서는 전기요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대규모 발전소 건설의 인허가 및 송전망 계획 등을 관리 감독하는 전기위원회를 독립적으로 설립한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더 큰 질문들

에너지의 지역화/공유화론은 에너지 민주주의가 에너지의 규모나 구성 방식과도 깊은 관련을 갖는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일원적으로 생산되고 일방적으로 분배되는 중앙집중형의 ‘대문자’ 에너지는 시민과 지역공동체의 의사와 참여를 봉쇄하며, 경성화된 성장 경로를 불가피하게 한다. 지역분산과 에너지원의 다원화, 생산과 소비 방식의 다양화가 실질적 에너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오히려 미래의 에너지에 관한 더욱 큰 질문들을 함께 던진다. 첫째, 미래에 바람직한 경제모델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둘째, 미래에 에너지를 얼마만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고, 거기에 맞는 에너지 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셋째, 미래에는 어떤 에너지원을 활용하고, 어떤 에너지기술에 투자해야 하는가? 넷째, 누가 미래의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결정하고,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그 사업을 실시해야 하는가? 
지역화/공유화의 방법으로 제시한 앞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결과가 공공성, 다원성, 전환성의 효과를 낳으면서 에너지 민주주의에 기여하게 될 것인지는 열린 문제이다.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고, 한국의 정치 체제와 기업 구조도 다른 만큼 한국에 적절한 제도 설계를 둘러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독점 대(對) 민영화 또는 시장화라는 대립 구도에만 갇혀서는 에너지 전환은 진도를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고, 기존의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의 방어적 태도와 시민 에너지 협동조합의 취약함, 시민사회의 냉담한 자세도 계속될 것이다. 더 좋은 제도와 방식을 제안하면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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