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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8 11:07
[언론기사] [연대와 소통] 탈핵을 맞는 네 나라 노동조합의 풍경들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3,941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발행 <연대와 소통> 45호(2017.9.)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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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을 맞는 네 나라 노동조합의 풍경들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 정확히는 60여년에 걸친 점진적인 핵발전소 퇴출 정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특히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공론화위원회와 시민참여단을 통해 결정토록 한 것에 대해 한수원 노동조합 등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들의 태도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에너지 노동조합들의 입장은 일견 이해할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것으로 비판받을 여지도 충분하다. 단지 탈핵 정책에 대한 입장 문제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닌 것이, 그동안 에너지 부문 공기업 노조들이 정부와 가져왔던 관계, 노사 간의 관행, 그리고 노동조합의 전략과 내부 상태도 두루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탈핵을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먼저 경험한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어떠할까 궁금해진다. 이미 탈핵을 대면한 나라의 에너지 노동조합들을 몇 가지 장면들을 통해 얼마간의 힌트를 얻어 보면 좋겠다. 

독일 : 압도적 탈핵 지지, 그러나 석탄발전 가교론의 문제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의 ‘탈핵 합의’ 이후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21년까지 질서있는 탈핵 경로를 밟아가고 있고 사민당과 긴밀한 총연맹과 산별노조 대부분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고, 핵발전 축소나 퇴출이 일자리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많았다.  
독일 뷜(Wyhl)의 신규 핵발전소 반대 운동 속에서 지금은 대세가 된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운동이 태동하고 있던 1976년에 독일의 노동조합원 4만 여명은 도르트문트의 경기장에 모여 찬핵 시위를 벌였다. 핵발전 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조합원은 노조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을 정도였고,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간극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8년이 되자 노동조합원들 중 반핵 캠페인에 참가하는 이들이 처음 생겨났고, 1981년에는 수천명의 조합원들이 독일 북부 브록도르프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결합했다. IG Metall(금속산별노조)을 위시하여 독일 노동조합들의 찬핵 입장은 1986년 체르노빌 이후 완전히 붕괴했고, 2001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탈핵 합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12만명이 참여했던 반핵 인간띠잇기에는 IG Metall을 포함하여 여러 노동조합들이 함께 할 정도로 독일의 산별노조들은 탈핵 운동의 주역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총연맹(DGB) 차원의 입장을 포함하여 다수의 독일 노동조합들은 탈핵과 재생에너지가 더 많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IG Metall과 IG BAU(건설산별노조)에는 재생가능에너지 생산과 설치, 그리고 건물 에너지 개선 사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림] “핵 대신 바람” 문구를 들고 있는 IG Metall 조합원들

독일 노동조합에서 탈핵 입장은 구체적인 논리로 자리잡았다. 기민당 연정에서 일부 핵발전소를 수명 연장하기로 하면서 탈핵 정책이 일부 후퇴했지만,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2011년에 다시 탈핵 과정이 시작되자 8개의 핵발전소가 즉시 발전을 멈췄고 2016년까지 15,000명의 일자리 감축이 발표되었다. 노조들은 이 감축에 저항했지만 원칙적으로 탈핵을 지지했고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조정하여 일자리 상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1년에 IG BCE(광산화학에너지산별노조)의 미카엘 바실리아디스 의장은 핵발전이 미래가 될 수 없다고 선언했고, 핵발전의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2백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서비스 노동조합 Ver.di는 탈핵이 가능한 한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석탄화력 발전에 대한 입장이 함정으로 등장한다. 바실리아디스 의장은 2011년 3월 22일 독일 수상이 설립한 “에너지공급안정에 관한 윤리위원회”의 14인 중 한 명이기도 한데, 그는 핵발전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실제 전환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분명하지만 또한 “에너지 정책은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전력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면서도 현대적 석탄 및 가스 발전소에도 의지하는 새출발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와 경쟁력 상실을 모두 최소화하려면 당분간 석탄과 가스를 에너지 가교의 주요 기둥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CCS(탄소포집저장) 기술 연구와 투자가 중요하며 이를 가로막는 법률적 장벽이 해결되어야 하며, 낡은 석탄 화력은 신규 화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에너지전환은 단계적이어야 하며 IG BCE는 그러한 전제에서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2014년 후반 독일 에너지 논쟁의 초점은 이미 핵발전에서 석탄의 미래로 옮겨 갔고, 노조들은 석탄화력 발전의 빠른 퇴출에 반대하는 사민당 소속 에너지장관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독일이 2020년 기후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까지 얘기했다. 노동조합들은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였고 독일의 석탄 산지들은 둘 다의 강력한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 페센하임의 폐쇄 갈등, 에너지 공공성 요구의 목소리

프랑스는 전력의 80%를 핵발전으로 공급하고 핵연료 재처리 등 여러 핵발전 수출산업까지 육성하고 잇는 ‘핵강국’이다. 프랑스에서 핵에너지를 대하는 노동조합의 태도는 조심스럽고 양가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양대 내셔널센터 중 하나인 CFDT(민주노동조합연맹)는 에너지 노동자의 고용과 에너지산업의 공공성에 대한 입장이 확고했고, 위험한 노동조건에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가졌으며 조합원들이 핵산업에 관한 더 나은 정보를 찾도록 기꺼이 돕고자 했다. 전통적으로 공산당과 가까웠던 또 하나의 내셔널센터 CGT(노동총연맹)에는 EDF(국영전력회사)와 AREVA(에너지기업)에 다수의 조합원이 있기도 하거니와, 공산당과 더불어 핵에너지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져왔다. 
그런데 2012년에 올랑드 대통령 후보가 페센하임에 소재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 2기를 2017년에 운전 종료하겠다고 공약했고, 한걸음 더 나가서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전환” 법안이 2014년 10월에 프랑스 하원을 통과하면서 핵산업은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핵발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 수준으로 낮추고 핵발전의 최대설비용량을 63.2GW로 제한한다는 것으로, 이와 함께 풍력 발전소를 현재의 2배로 늘리고 태양광 발전량은 3배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도 제출되었다. 이를 계기로 페센하임 핵발전소 폐쇄 문제는 정치권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오게 되었다. 
페센하임은 라인강을 끼고 독일과 접경한 프랑스 북동부 알사스 지방의 작은 도시로 18.4㎢ 면적에 인구 2천300여명에 불과하다. 이곳에 1977년에 900㎿ 규모 핵발전소 2기가 건설되어 가동 중인데, 지금의 도시와 지역경제도 핵발전소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발전소는 지어진지 40년이 지나서 프랑스에서 가장 노후한 핵발전소이며 크고 작은 고장도 빈발해왔다. 이 지역의 지진 단층대가 갖는 위험성과 함께 사고 시 라인강의 치명적 오염 우려가 제기되었고, 발전소 바로 옆에서 국경을 끼고 있는 독일 시민들의 폐쇄 요구 시위도 이어졌다. 
핵발전소가 폐쇄되면 여기에 의존하던 지역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2015년의 한 기사에 따르면 페센하임 지역 주민의 90%가 핵발전소가 계속 가동되기를 바라며, 클로드 브렌데르 시장도 핵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당분간 다른 산업도 들어올 수 없고 상당수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원전에서 나오는 지역 발전기금도 끊겨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역의 노동자들은 페센하임 폐쇄 반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는데, EDF에 많은 조합원을 갖고 있는 CGT가 주도적이었다. 
페센하임 핵발전소 폐쇄 안건을 다룰 예정이던 지난 4월 6일의 EDF 이사회를 앞두고, CGT는 이사회에 파견한 노동조합의 대표들에게 페센하임 폐쇄를 반대하도록 요청했고, 조합원들에게는 이사회가 열리는 동안 본사건물 앞에 피켓 라인을 만들도록 촉구했다. CGT는 성명서에서 “페센하임은 안전하며,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도 그렇게 인정되었다”고 말하고, 이 발전소가 프랑스의 에너지 안보에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CGT의 EDF 지부에게 전기라 불리는 필수재를 생산하는, 공공 서비스를 위해 가동되는 “지켜야 할 공장” 중 하나라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페센하임 폐쇄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조처를 진행했고, 페센하임 핵발전소를 2020년 4월을 마지막으로 완전 폐쇄하기로 한 공고문을 게재했다. 환경장관은 페센하임 폐쇄가 EDF가 에너지 전환에 더욱 적극 나서도록 할 것이라는 점과 일자리의 상실을 막을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이보다 앞서 노동조합의 페센하임 폐쇄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2016년 4월, 루아얄 환경장관은 페센하임 지역에 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 공장을 유치하는 아이디어를 밝힌 바도 있다. 루아얄은 프랑스와 독일 양국이 페센하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협력하기로 했으며, 독일 정부가 발전소 부지를 재개발, 테슬라의 전기차 조립공장 또는 제3세대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림] 페센하임 폐쇄에 반대한 CGT 조합원들

프랑스에서 상대적으로 작지만 급진적인 내셔널센터인 SUD(연대단결민주노동조합)의 에너지 부문에 해당하는 조직인 SUD에너지(SUD ?nergie)는 올랑드 정부의 페센하임 폐쇄 방침에 비판적인 입장을 냈지만 그 배경은 CGT와 다른 것이어서 언급할만하다. SUD에너지는 핵발전소 폐쇄 결정은 장기적 측면에서 세계의 에너지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핵발전을 지속해야 하는지, 핵에너지의 비중을 줄여야 하는지, 적절한 미래의 에너지 믹스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민주적 논쟁과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핵발전소 운전을 중단하는 결정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전력 이용의 안정성과 페센하임 노동자들 전체를 만족시키는 전환을 가능케 하는 최선의 방책이 준비되었을 것이지만 이를 간과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나온 폐쇄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동시에, SUD에너지는 일부 사람들이 핵발전소 폐쇄가 에너지 산업과 일자리 축소의 위협을 가져올 것이라는 카드를 흔들어대는 것에도 반대했다. 핵발전소 경영진은 사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자리가 염려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을 자극했지만, 이 경영진은 그 동안 무책임하게 운영비를 줄이고 고용을 방치하는 조치들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SUD에너지는 노동자들의 전환 문제를 미리 고려하고 민주적으로 결정되는 장기적 에너지 정책의 수립을 주장하며, 이를 위해 프랑스의 에너지 미래를 함께 결정하기 위한 광범한 대중적 토론과 국민투표가 필수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에너지 전환을 효과적이고 일관성 있게 실현하기 위한 공적 에너지 서비스 기구를 요청했다. 
또한 SUD는 에너지 전환은 전력 및 가스 산업 노동자의 상대적으로 좋은 지위를 모든 에너지 생산 부문으로 확장하고, 외주하청된 업무들을 다시 직영화하고, 시장 논리로부터 벗어나서 좋은 고용의 장기적인 재구조화 계획을 세우는 사회적 환경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디아블로캐년 핵발전소의 정의로운 전환 합의

미국 캘리포니아의 디아블로캐년(Diablo Canyon) 핵발전소 폐쇄와 전환 합의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적극적인 기후와 에너지 정책, 그리고 운영사인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의 규모와 재정 능력이 배경이 되었지만,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1985년에 가동을 시작한 디아블로캐년은 연간 1,8000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캘리포니아 전력 수요의 8.6%를 담당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13년에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SCE)이 샌오노프레 핵발전소 폐로를 결정해서 캘리포니아에서 유일하게 남은 원전이다. 이 발전소를 운영하는 PG&E는 1,2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협력업에도 200명의 노동자가 있다. 
환경 단체들은 디아블로캐년 건설 시기부터 끊임없이 반대운동을 벌였고, 1981년에는 2주간의 봉쇄투쟁 끝에 2천여 명이 연행되는 격렬한 대립도 일어났다. 이 운동에서 환경보전에 치중하는 기존 시에라클럽과의 의견 차이가 계기가 되어 미국의 유력한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이 창립되기도 했거니와, 지구의 벗은 이후로도 디아블로캐년에 대해 문제제기를 계속했다. 특히 디아블로캐년은  ‘샌 안드레아스’ 활성 단층의 영향권에 자리해 지진이 일어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법률 소송도 이어졌다. 현재 세계에서 내진설계 규모 7.5 이상으로 상업 운전하고 있는 핵발전소는 일본 하마오카와 미국 디아블로캐년 이렇게 두 곳 뿐인데, 이는 역으로 이 지역이 얼마나 지진 우려를 받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림] 디아블로캐년 핵발전의 질서있는 전환을 위한 공동제안서

그런데 2016년에 디아블로캐년의 운영면허 갱신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해당 노동조합인 IBEW Local 1245는 대응에 고심하기 시작했는데, 2018년에 운전이 정지될 경우 600명의 조합원 고용과 지역 경제가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 지구의 벗 등 환경단체들은 핵발전소를 퇴출할 것과 함께, PG&E가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및 저장 설비로 투자를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사측에서는 연장 운전시의 경제성 하락과 주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를 예상하며, 면허 갱신에 부정적인 전망을 보였고 이를 인지한 노동조합은 대화에 나섰다. 그 결과 디아블로캐년의 가동을 8-9년 연장한 뒤 폐쇄하고, 조합원들은 발전소 가동 중단에 따른 보너스 등 보상을 받으며 지역사회도 줄어드는 세수만큼을 사측이 보전해주는 합의에 도달했다. 동시에 사측은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설비를 구축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들은 직업 훈련을 통한 전환을 준비하며, 지역사회는 경제와 세수를 다변화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2016년 6월 21일, PG&E는 디아블로캐년을 2025년까지 가동 정지하고 폐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고, 2031년까지 자사 총 발전량의 55%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담당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았다. 이는 재생에너지 공급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정한 캘리포니아 기준보다 더 나아가겠다는 자발적 선언이다. 
이러한 합의와 계획에는 지구의 벗이 펴낸 기술경제성 보고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보고서는 디아블로캐년을 어떻게 값싸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및 저장설비로 대체 가능한지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시했고, 이를 근거로 환경단체와 경영진 그리고 노동조합은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와 전환을 위한 세부 방안을 논의했고 공동의 제안서를 작성했다. 
지구의 벗은 이 합의에 대해 핵과 화석연료를 안전하고, 깨끗하고, 경제적인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의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몇 가지 법률적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디아블로캐년의 전망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염려하던 지역사회도 제안의 구체성을 보면서 점차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국: 노사정의 신뢰 결핍과 부재한 전환 전략

한국의 에너지 노동조합 다수는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바꾸는 ‘정의로운 전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가 탈석탄화력 정책을 밝힌 직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이러한 정책 방향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석탄화력 발전사들을 포함하는 노동조합 조직으로서는 전향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양대 노총 소속 노조 그리고 한수원 노조 등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 노조를 망라하는 36개 에너지산업 노조가 참여하는 네트워크인 에너지정책연대는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입장으로 출발했지만, 최근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정책연대 내에서 한수원 노조뿐 아니라 전국전력노조, 한전KPS노조, 한국전력기술노조, 한전원자력연료노조, 한국원자력연구노조 등이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에 가시적으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7월 19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일시중단을 의결한 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내면서, 충분한 시간을 둔 공론화를 거치지 않는 3개월 짜리 공론화 과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들은 탈핵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수원 노조는 지난 9월 9일에 태화강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한수원 노동조합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노동조합들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전국공공연구노조는 7월 13일, ‘“책임성 있는 에너지”운운하는 원자력 학계 교수들은 국민들에 대한 협박을 멈추라!’는 성명을 통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이며 공공기관 연구자들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탈핵 논쟁 국면에서 원자력공학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집단적 반발 이후 과학기술연구자 그룹에서 정반대의 목소리를 처음 낸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엄밀히 말하자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와 한수원의 기존 조합원들 고용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고리1호기 폐로는 일정한 영향이 있지만, 이 역시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그동안 관리 및 폐로 작업에 조합원들을 투입하거나 다른 본부로 전환 배치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한전원자력연료노조나 한전KPS노조 역시 점진적인 탈핵 과정 속에서 최소한 수십년 동안 핵발전소 연료 제조와 유지보수 수요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고용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전력기술노조는 핵발전 증설이나 수출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목소리를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주력 사업장 중 하나인 두산중공업이야말로 원전의 주요 설비와 부품을 공급하는 곳이다. 
한수원 노조의 적극적 행동은 우선 신고리 5,6호기가 핵발전산업 전체의 규모와 전망을 좌우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대리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전력산업 분할로 한전에서 한수원이 분리한 이후 노동조합이 상급단체를 결정하기 위해 수 차례 시도를 했지만 실패한 끝에, 현재 딱히 우산으로 삼을 곳이 없는 상태에서 불안감이 더 큰 것도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공공운수노조뿐 아니라 총연맹 지도부에 적극적으로 탈핵 정책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민주노총 산하의 에너지 노동조합들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맞서 싸우고 내부적으로 대응 논리를 만들어 온 경험을 가진 차이가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노사정 사이의 사회적 신뢰도 부족하고, 환경운동 진영이나 노동조합 모두 구체적인 전략과 청사진을 가지고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그대로 수입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독일이나 지금도 대립이 끝나지 않은 프랑스, 그리고 미국 노동조합의 사례들은 대립과 격론을 직시할 때 비로소 해답을 찾아갈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10년, 20년, 30년 뒤 한국의 에너지 상황과 바람직한 에너지 민주주의 체제를 상상해보고 거기에 다가갈 수 있는 조건과 경로들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과감한 제안과 모색 속에 에너지 노동조합이 더 많은 사회적 지지를 얻고 조합원들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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